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가습기살균제 ‘무죄’ 불복, 다시 거리로

이소현 기자I 2021.01.21 15:59:49

21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 총연합 기자회견
"참사 가해기업 무죄 판결,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가습기 살균제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의하는 피해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지난 12일 선고 당일 피해자들 기자회견과 지난 19일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 기자회견에 이어 세 번째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 총연합은 2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너무나 참담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며, 1심 재판부를 규탄하고,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 가해기업 임직원들에 대해 형사처벌을 촉구했다.

21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임직원들 1심 무죄 선고 법원 규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총연합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는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필러물산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들 임직원 13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성분(CMIT·MIT)이 폐 손상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입증이 부족하기 때문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검찰은 지난 18일 1심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피해자들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물질의 독성과 이 물질을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한다는 걸 기업들은 인지하고 있음을 재판 과정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는 법원의 판결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억울한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가습기 안 세균 번식을 막아주고 산림욕 효과가 있다는 업체들의 화려한 광고와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에 의한 품질표시’라는 문구를 보고 믿고 구입했다”며 “갓 태어난 아이에게 세균 없는 가습을 주며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호흡기 약한 가족의 건강을 위해, 대형마트·약국·편의점에 이어 심지어 동네 구멍가게에까지 판매하고 있었던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판결문에서 언급된 11명의 피해자 중 9명이 영유아이고 그 중 2명은 사망했다”며 “태어나자 마자 갖게 된 폐 손상, 제품이 원인이 아니라면 폐 손상으로 죽거나 아팠던 아이들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했다.

21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임직원들 1심 무죄 선고 법원 규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참사피해자총연합 관계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해자가 존재함에도 동물실험 결과를 중요한 근거로 삼은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1심 무죄 판결의 핵심 근거가 된 인과관계 증명에서 동물 실험은 절대적 필수조건이 아니다”라며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과 살아 있지만 고통 속에 살아가는 피해자들의 몸이 명백한 증거”라고 비판했다.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절대 인정할 수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가해기업들은 죗값을 치러야 하고, 정부는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때까지 피해자들은 절대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지난 19일 재판에 직접 증언한 전문가들이 나선 기자회견에서 재판부가 과학적 인과관계의 논리를 잘못 이해했다고 지적했다. 변호사인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사건은 과학에 의존해 재판한 전례 없는 사법과정”이라며 “과학의 진실추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무결점만 진실로 인정한다면 사실 대부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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