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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형수 속여 보험금 빼돌린 시동생…검사 기지로 재판행

이재은 기자I 2023.03.09 22:51:59

檢, 사문화된 ‘지정고소인 제도’ 빼들어
형 사망보험금 2억 3500만원 사용 후
형수 서명 받아낸 처벌불원서 제출
“경제공동체 없는 경우 좋은 대안”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지적장애를 가진 형수로부터 형의 사망보험금을 빼돌린 시동생이 재판에 넘겨졌다. 시동생은 ‘친족상도례 규정’으로 처벌을 면하려 했지만 한 검사가 ‘지정고소인 제도’를 꺼내며 기소할 수 있게 됐다.

(사진=방인권 기자)
전주지검 정읍지청은 횡령, 공전자기록 등 불실기재, 불실기재 공전자기록 등 행사 혐의로 A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2014년 10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형의 사망보험금 2억 3500만원을 형수로부터 빼돌려 사용하고 허위 부동산 매매 계약서로 형수의 집을 자신 명의로 등기 이전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형의 사망보험금 대부분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사건은 형의 사망보험금을 사용하는 A씨를 수상히 여긴 전북의 한 장애인단체가 수사를 의뢰하며 알려졌다.

당시 증거 자료로는 A씨의 혐의가 명백했으나 A씨는 형수 명의로 된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상태였다. 워드로 작성된 처벌불원서에는 A씨가 거짓으로 받아낸 형수의 서명이 담겼다.

검찰은 ‘친족상도례 규정’에 따라 피해자인 형수가 시동생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친족상도례는 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배우자 간 일어난 절도·사기죄 등 재산범죄 형을 면제하는 규정으로 특히 재산과 관련된 사건에서는 법의 개입을 자제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처벌하기 위해선 고소가 필요했지만 검사는 ‘고소’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 형수에게 A씨에 대한 처벌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에 검사는 사실상 사문화된 ‘지정고소인 제도’를 빼들었다.

형사소송법 228조는 “친고죄에 대해 고소할 자가 없는 경우 이해관계인의 신청이 있으면 검사는 10일 이내에 고소할 수 있는 자를 지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제도는 적용 조건이 까다로워 실무에 적용된 사례가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검사는 정읍지청 내부 회의를 거쳐 이해관계인을 장애인단체로 지정했다. 비장애인인 형수의 아들이 이해관계인으로 적합했으나 아들은 A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어 제외됐다.

이해관계인인 장애인단체는 검사에게 고소인 지정을 요청했고, 검사는 국선변호인을 고소인으로 정했다. 고소장을 받은 검사는 사건을 조사한 뒤 A씨를 기소했다.

국원 전주지검 정읍지청장은 “2021년 12월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돼 지금은 장애인 재산범죄에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지만, 법 개정 이전의 사건까지 소급 적용되지는 않는다”며 “장애인 피해자를 위해 나서줄 경제 공동체가 없는 경우 여태껏 실무에서 쓰인 사례가 없는 지정고소인 제도가 좋은 대안이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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