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잇단 사고…"제도 탓? NO…운영의 문제"[유명무실 내부통제]

이연호 기자I 2022.08.02 17:50:09

금감원, 4조 원대 이상 외환 거래 적발에 검사 확대
우리은행 700억 원 등 금융권 전반 잇단 횡령 사고
당국, 명령휴가 확대·지배구조법 개정 등 검토…은행도 자체 대책 서둘러
"제도 문제 아닌 운영의 문제…대표이사 책임 명확히 해야"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금융업계가 각종 잇따르는 금융 사고에 몸살을 앓으면서 금융권 안팎에서 내부 통제 시스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크고 작은 횡령 사고, 이상 외환거래 모두 결국 내부 통제 시스템의 비실효율적 운영 탓으로 귀결되면서 제도적 측면에서의 개선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반짝’ 통제에 그치고 있어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준수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거액 해외 송금 관련 은행 검사 진행 상황’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횡령에 수상한 외환거래까지…비실효적 내부 통제 시스템 도마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이상 외환 거래와 관련한 자체 점검 결과를 금감원에 제출한 은행은 단 한 곳도 없다. 지난 6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에서 수상한 4조 원대 외환 거래가 발견되자 금감원이 지난달 말까지 국내 은행들에 유사 거래가 있는지 스스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내 달라고 요청했지만 기한을 준수한 은행은 없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중소 지방 은행 몇 곳이 제출했는데 보완을 요청했고, 나머지 대형 시중 은행들은 아직 낸 곳이 없다”며 “시간을 맞추는 것보다 점검을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 외환 거래에 가상자산 거래소까지 얽히며 소위 ‘김치 프리미엄(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 시세보다 높은 현상)’을 노린 차익 거래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당국의 요청 항목이 늘어났고 은행들이 그런 요구에 추가로 응하다 보니 제출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의 최종 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자금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시작해 홍콩, 일본 등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파악되면서 차익 거래나 자금 세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동시에 거액의 비정상적 해외 송금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음에도 이를 미리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은행의 내부 통제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은 외환 거래뿐 아니라 직원들의 계속되는 횡령으로도 비상이다. 우리은행의 700억 원 횡령보다 규모가 작을 뿐 올 들어서만 지역농협, 새마을금고, KB저축은행 등에서 횡령 사건이 계속 터져 나왔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이 지난 2017년부터 지난 5월까지 5년여 간 금융업계 횡령 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금융업계의 횡령 직원은 174명, 횡령 금액은 1092억 원에 달했다.

이 같은 금융권의 지속적인 사고의 원인으로는 유명무실화된 내부 통제 시스템이 일차적으로 거론된다. 내부 통제 기준 마련과 준수를 별개로 생각하는 문화 탓에 내부 통제 장치에 실효성을 거둘 수 없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 내부 통제 개선 방안 마련 착수…“사고 발생 시 대표 책임 명확히 해야”

이와 관련 금감원은 지난달 26일 업계와 함께 ‘금융 사고 예방 내부 통제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첫 회의를 가졌다. 내부 통제 준수 문화 정착을 위한 3대 전략 과제를 담은 내부 통제 개선 방안 초안을 마련한 금감원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오는 10월 중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특히 금융당국은 은행 내 명령 휴가 제도(직원을 불시에 휴가 보낸 뒤 업무에 부실이나 비리가 없는지 점검하는 제도) 대상 확대 등 장기 근무자 관리 체계 강화를 은행들에 요구하고 있다. 700억 원을 횡령한 우리은행 직원이 본점 기업개선부에서 10년 간 장기 근무한데다 명령 휴가 대상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전체 직원 5만5286명(신한은 1월 기준) 중 의무 명령 휴가 대상 직원은 15.6%에 불과했다.

금융당국은 내부 통제를 위해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도 검토 중이다.

은행들도 최근 이상 외환 거래와 관련해 자발적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달 중 외화 송금의 적정성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하는 팀을 본점에 꾸리고, 영업점에서 특이 사항이 있다고 판단되는 외화 송금 거래가 발생할 경우 이를 한 번 더 확인할 계획이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은행은 최근 전 지점에 ‘금감원 검사 관련 외환 영업 유의 사항·개선 사항 안내’ 문서를 배포하며 외환 부문 검증 절차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처음 수출입 거래를 하는 고객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현장 방문을 하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단순히 법과 제도를 바꿔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가 부여된 준법감시인(대표이사)에 책임을 묻는 것은 해석론의 문제다”며 “결국 금융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대표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판례부터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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