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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사 요구 거부한 산은‥"아시아나 다른 곳에 판다"

이승현 기자I 2020.08.03 16:00:00

HDC현산 재실사 요구에 채권단 입장 밝혀
"금호·채권단, 전혀 책임없다…계약금 소송 내지 않길"
HDC에 마지막 당부도 "항공업 장기적으로 좋아질 것"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채권단이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재실사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재실사가 이뤄진다면 인수를 전제로 한 제한적인 실사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이 무산되면 모든 법적 책임은 HDC현산에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의 재매각을 빨리 추진하겠다”는 말도 했다. 사실상 HDC현산과의 매각 협상은 불발될 가능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제3자에게 아시아나를 팔겠다는 것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3일 온라인 기자 간담회를 통해 “HDC현산은 지난해 말 인수계약 전 이미 7주간 엄밀한 실사를 했다”며 “상황 변화가 있다면 이에 대한 점검을 하면 되는데, 다시 실사를 하겠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 역시 “통상적인 인수합병 계약에서 이런 수준의 재실사는 없다. 기본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면서 “인수가 전제된다면 영업환경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을 전제로 제한된 범위에서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HDC현산이 금호산업과 채권단의 재실사 거부를 이유로 계약을 파기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에서 진행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KDB산업은행 제공)
이 회장은 특히 매각무산 때 예상되는 2500억원 규모의 계약금 반환소송에 대해 매도자인 금호산업 측과 채권단은 전혀 잘못이 없다고 강조했다. 계약무산에 따른 모든 법적책임은 HDC현산에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입장이다. 이 회장은 “계약이 무산되도 HDC현산이 계약금 반환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HDC현산은 지난해 12월 금호산업 측과 총 2조5000억원에 아시아나 경영권을 인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계약이 무산되면 계약 당사자들의 책임소재 정도에 따라 향후 계약금 반환소송의 승패가 갈릴 전망이다.

채권단은 또 금호산업 측이 재무자료 제공 등 HDC현산의 요건에 충실히 응해왔기 때문에 거래종결 선행조건이 충족됐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금호산업은 지난달 29일 ‘8월 12일 이후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HDC현산 측에 보냈다. 채권단 역시 8월 12일에 계약해지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채권단은 아시아나 매각 무산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준비도 해왔다고 밝혔다. 매각 무산 시 아시아나 정상화를 위한 유동성 지원과 영구채 출자전환을 통한 채권단 경영관리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아시아나 자회사 분리매각 등 구체적 방안은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진행할 예정이다.

최 부행장은 아예 “시장여건이 허락하면 재매각을 빨리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HDC현산의 매각은 사실상 실패했고, 다른 대기업에게 팔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회장은 미자막 당부의 말도 전했다. 그는 “HDC현산이 지난해 말 2조5000억원에 아시아나 인수 결정 때 항공산업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밝게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의 먹구름이 걷히면 항공산업이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시장이 열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두차례 정몽규 HDC현산 회장과 만난 이 회장은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달라고 촉구한 셈이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HDC현산 상황에 대해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소매업 시장에서 성공과 실패의 엇갈린 길을 간 시어스와 몽고메리 워드의 사례를 들었다. 몽고메리 워드는 전쟁 후 병사들이 실업자가 돼 공황에 빠질 것을 우려해 투자를 줄인 반면, 시어스는 교외로 사업을 확장하며 수요증가에 대비했다. 성공의 길을 걸은 건 시어스였다.

이 회장은 이제는 결단을 할 시점이 왔다고 했다. “그동안의 쓸데없는 공방은 마무리하고 양측이 정말 진지하게 협상해 종결지었으면 한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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