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2011년 데자뷔' 가보지 않은 길 걷는 연준…한은의 선택은?

최정희 기자I 2021.03.25 15:09:47

2010년말 양적완화2에도..인플레 우려에 금리 올라
명목GDP 목표제 검토하다 철회한 연준, 10년뒤엔 AIT 도입
바짝 긴장하는 신흥국, 韓은 언제 금리 올릴까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3일 오후(현지시간) 화상으로 열린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CNBC)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최근 인플레이션 논쟁은 어떤 측면에선 2011년과 닮아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10년 11월 양적완화(QE)2를 시작했다. 얼어붙은 고용, 낮은 물가 등이 고민거리였다. 그러나 6개월도 안 돼 국제유가는 물론, 전 세계 주요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3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으니 말 다했다.

곧바로 연준에 비난이 쏟아졌다. 양적완화가 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란 경고 메시지가 잇따랐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추가 실시해 돈을 더 풀겠다는 데도 인플레이션 우려에 외려 국채 금리는 올랐다. 미국 10년물 금리는 2010년 10월초 2.527%였는데 2011년 2월초 3.555%로 불과 5개월 만에 1%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통화정책에 직접 영향을 받는 2년물 금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같은 기간 0.358%에서 0.772%로 0.4%포인트 넘게 뛰었다.

연준이 돈을 더 풀겠다는 데도 시장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며 연준의 판단을 의심했다. 이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다. 다행히 당시엔 연준의 판단이 옳았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2011년 5월 이후 서서히 하락했다.

그 뒤 연준이 고민한 것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목표제’였다. 고정된 물가안정목표 대신 물가와 실물경제에 동일한 가중치를 두고 사전에 정해진 명목GDP를 따라가도록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것이다. 물가안정목표보다 성장에 좀 더 무게를 둘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연준이 이런 고민을 한 것은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더라도 연준이 추가적인 자산 매입을 계속할 의도가 있다고 믿는다면 장기금리가 하락하고 경제성장을 계속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2011년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명목GDP 목표제를 논의했으나 결국 도입은 포기했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자신의 자서전 ‘행동하는 용기’에서 “명목GDP 목표제가 효과를 보려면 신뢰성이 있어야 했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안간힘을 쓰면서 1980년대, 1990년대의 대부분을 소비한 연준이 갑자기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지속될 지 모르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미래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이 전략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뒤늦게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용기와 능력이 있으리라고 국민들이 과연 믿을 수 있을까?”라고 당시 고민을 밝혔다.

그러나 10년이 더 지난 후의 연준은 이와 유사한 방안을 꺼냈다. 작년 8월 도입한 평균물가목표제(AIT)가 그것이다. 일시적으로 연 2%를 넘는 물가상승을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전망이 아닌 실제 데이터를 보고 통화정책을 움직이겠다는 ‘포워드 가이던스’도 내걸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버냉키 전 의장의 예상대로 시장은 연준을 의심하고 있고 이는 금융시장 변동성을 자극하고 있다. 당시엔 연준의 판단이 옳았지만 지금도 그때와 같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연준은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이를 바라보는 신흥국들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4일 주요 현안에 대한 서면 질의응답을 통해 연준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며 “통화당국으로서 경각심을 갖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준의 가보지 않은 길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달 FOMC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연준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수년 간 2%의 인플레이션 달성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로 달성하지 못했다”며 “새로운 통화정책 프레임은 예측에 따라 선제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실제 데이터를 보고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새로운 관행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연준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준은 올해 물가상승률을 2.4%로 내다봤다. 물가목표치 2.0%를 넘어서는 수치다. 2022년, 2023년에도 각각 2.0%, 2.1% 물가가 올라 전망치대로라면 목표치를 달성한다. 그럼에도 숫자를 확인해 후행적으로 통화정책을 조정하겠다는 것은 사람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끌어올려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앞당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시장은 2011년 때보다 더 심한 혼란을 느끼고 있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라는 연준의 무기 외에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정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고 의심하는 목소리가 크다. 미국에선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이 통과된 데 이어 3조달러의 인프라 투자 부양책이 추진되고 있다.

부양책이 얼마나 큰 인플레이션을 유발할지는 사실 알기 어렵다. 상반기는 작년 마이너스 유가를 고려하면 기저효과만으로도 물가상승률이 높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하반기까지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인지다. 인플레이션을 보고도 연준이 이를 용인하고, 새로운 통화정책 프레임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 ‘경각심’ 키우는 신흥국..韓도 예외 아냐


연준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신흥국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고 미국 국채 금리 상승세를 인위적으로 억제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흥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미국으로 옮겨갈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표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에서도 일정 수준의 이자가 나오는데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 신흥국 채권에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4.25%→4.50%), 터키(17.00%→19.00%), 브라질(2.00%→2.75%)은 이달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코로나19 속에 경기는 안 좋지만 인플레이션과 통화가치 하락을 우려한 결정이다. 이 과정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나치 아그발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하는 등의 소동도 벌어졌다.

우리나라는 이런 취약국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연준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이상 금융시장이 언제 어떻게 요동칠지 알 수 없다. 외국인은 2월에도 채권을 9조원 가까이 순투자하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은 1133.60원으로 연초 이후 무려 47.3원이나 올랐다. 그 만큼 원화가치가 달러 대비 하락했다는 얘기다.

이주열 총재는 “시장참가자들은 성장과 물가의 상방리스크 확대를 이유로 자산매입 축소나 금리 인상 시기가 연준이 시사하는 것보다 다소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상존한다”며 “앞으로 발표되는 여러 경제지표의 향방에 따라 연준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 기대가 수시로 조정되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으므로 통화당국으로서 경각심을 갖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화정책을 둘러싼 헤게머니가 더욱 더 복잡해지고 있는 셈이다. 금리 인상 주판알을 튕길 만큼 얼마나 성장과 물가가 좋아지느냐가 관건인데 그 시기가 빨라진다면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을 준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총재는 “물가 전망에 기초해 보면 지금은 인플레이션 리스크 확대를 우려해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상황은 아니다”며 “현재로서는 정책기조를 서둘러 조정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성장과 물가 여건이 개선되면 ‘질서 있는 정상화’를 미리 준비하는 것을 1년 남은 임기내 중요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아져야 할까. 2016년 2%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한 이후 한은은 2017년 11월, 2018년 11월에 금리를 올렸는데 당시 물가 전망(당시 10월에 나온 전망치)은 각각 2.0%, 1.6%였다. 성장률 전망은 3.0%, 2.7%였다. 코로나 이전 한은이 추정한 잠재성장률(2019~2020년)은 2.5%이고, 코로나로 잠재성장률이 낮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과거 데이터를 비교하면 2% 초중반대 성장률, 1% 후반대 물가상승률은 금리를 만질 만한 필요조건은 되는 셈이다. 물론 작년 마이너스 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도 감안해야 한다. 5월 수정 경제전망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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