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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과거 영광 되찾을까…존재감 드러내는 전경련

이준기 기자I 2021.11.09 17:58:30

현 정권의 '전경련 패싱' 속 절치부심 4년
내년 대선 앞두고 존재감 드러내기 안간힘
민간네트워크 강화·정책연구 기능 강화
경제계 첨병이냐, 이대로 몰락이냐 기로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창립 60주년 사진전 제막식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예전 같았으면 대통령님도 오셨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올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창립 60주년을 두고 재계 고위 관계자가 내놓은 발언이다. 과거 경제단체의 맏형 격에서 이젠 변방에 머무는 존재로 추락한 현실을 한탄한 것이다. 창립 40주년 행사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50주년 행사 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석했지만, 이번엔 정부·여당의 철저한 외면 속에 쓸쓸한 환갑을 보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절치부심의 4년을 보낸 전경련이 뼈를 깎는 쇄신 속에 정경유착의 표본이란 오명을 떨쳐내고 경제·산업의 선봉장이라는 영광의 시간을 되찾을지 주목된다.

“역대 가장 힘들었던 나날들”

문재인정권 들어 전경련은 역대 최악의 나날을 보내왔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의 진앙으로 매도되면서다. 그 파장은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모금,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선비자금 제공, 1997년 세풍사건, 2002년 차떼기 등의 사태를 넘어섰다. 당시에도 거론되지 않았던 ‘전경련 해체’ 주장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여론의 질타 속에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수입은 반 토막이 됐고, 임직원 수는 40% 넘게 줄었다. 월급도 깎였다.

더 큰 문제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위상이다. 전경련의 빈자리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의 몫이었다. 문재인정권은 재계의 힘을 빌릴 때마다 대한상의를 찾았다. 민간경제외교 역할 집중, 부당한 요청에 다른 협찬·모금활동 금지 등의 각종 쇄신에도, 현 정권은 ‘전경련 패싱’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후임을 찾지 못한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명예회장 겸임)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5연임을 해, 최장수 전경련 회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쥐는 아이러니한 모습도 연출됐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로비에서 열린 창립 60주년 사진전(부제: 가슴이 뛴다) 제막식에 참석,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존재감 드러내기 ‘안간힘’


물론 전경련 안팎에선 국정농단 사태 연루자들이 이미 떠난 만큼 지금의 현실이 억울하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전경련은 정부 돈 한 푼 받지 않는 순수 민간 종합경제단체”라며 정부의 노골적인 질타·무관심을 정치적 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나 내부에선 일단 ‘우리 할 일부터 묵묵히 제대로 하자’는 분위기가 더 세다.

전경련 특유의 강점인 해외 민간네트워크, 즉 민간외교의 첨병 역할을 되레 더 강화해왔다. 이날 미국 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제33차 한미재계회의 총회’를 열고 기업들의 최대 화두인 공급망 재편 문제를 논의한 게 대표적이다. 올해 6월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 초청 간담회, 9월 한·대만 경협위, 지난달 한·호주 경협위 개최 등도 돋보였다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전경련 위상이 말이 아니긴 하지만, 해외 민간네트워크 분야에서만큼은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 많이 나온다”고 했다.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중심의 정책 연구 기능 등을 강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들어 이날까지 전경련 한경연이 내놓은 자료만 217건에 달한다. 휴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1건씩을 발표한 셈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언젠간 역할을 인정해줄 것으로 믿고, 묵묵히 우리 할 일에 충실했다”고 했다.

영광? 몰락?…갈림길 선 전경련

재계의 시선은 내년 대선에 쏠리고 있다. 차기 정권에선 그나마 사정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다른 경제단체인 대한상의·무역협회가 각각 최태원(SK그룹 회장)·구자열(LS그룹 회장) 체제로 전환, 변화를 꾀하는 상황에서 전경련이 더 존재감을 드러낼 묘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IT기업 총수들의 회장단 합류 추진, 2~3세대 경영인과의 소통 등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경제단체 통합설’도 전경련이 떨쳐내야 할 숙제다. 공정경제3법·노동관계법·중대재해처벌법 통과 등 정부·여당의 반(反)기업 드라이브에 무력함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결국 전경련·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을 한데 묶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에선 전경련의 위상은 나아질 것으로 본다”면서도 “그러나 과거 대기업 이익 대변·정경유착 주도 등의 이미지를 없애는 쇄신의 쇄신을 거듭해야 4대 그룹 재가입 등을 통한 경제단체의 맏형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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