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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法 "결혼전 범죄로 인한 출산, 혼인무효 사유 아니다"

성세희 기자I 2016.02.22 15:15:22

베트남 여성, 2012년 우리나라 남성과 혼인
이듬해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재판 도중 출산 사실 공개
남편 혼인 무효 소송 제기…1·2심서는 혼인 무효 인정

[이데일리 성세희 기자] 결혼전에 출산한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더라도 범죄 피해로 인한 출산이라면 이 결혼을 무효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김모(41)씨가 부인 H(26)씨를 상대로 낸 혼인의 무효 등 소송을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 환송한다고 22일 밝혔다.

김씨는 2012년 국제결혼 중개업자 소개로 베트남 국적인 아내 H씨를 만나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우리나라로 입국한 H씨는 김씨 어머니와 양아버지인 최모씨가 사는 시댁에 함께 거주했다.

시아버지였던 최씨는 H씨를 강제 추행하고 성폭행해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2013년 징역 7년을 확정 선고 했다. 김씨는 재판 도중 H씨가 결혼 전 베트남에서 아이를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그해 8월 결혼전에 출산한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로 H씨를 상대로 결혼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H씨는 “만 13세였던 2003년 10월 베트남에서 소수민족인 타이족 남성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했다”라며 “2004년 친정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출산했는데 타이족 남성이 아이를 데리고 가버렸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씨를 상대로 이혼과 위자료 지급 등을 요구하며 맞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는 모두 김씨 손을 들어주었다. 전주지법 가사항소2부(재판장 김양희)는 H씨가 김씨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이 혼인을 무효라고 판결했다. H씨가 제기한 이혼과 위자료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성폭력 범죄로 인한 출산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만으로 혼인을 취소하기는 어렵다며 재판을 돌려보냈다.

대법원 재판부는 “아동성폭력 범죄 피해자인 H씨가 결혼전에 출산한 사실을 김씨에게 알릴 의무는 없다”라며 “원심 재판부가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자란 국제 결혼 당사자를 충분히 심리하고 혼인 취소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H씨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범죄 피해로 출산했다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혼인 취소 사유로 보기 어렵다”이라고 판결했다.

H씨 재판을 지원해온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아동 성폭행 피해자였다가 우리나라로 온 베트남 여성이 또다시 성폭행을 경험하게 돼 결혼생활이 끝났다”라며 “대법원이 성폭력으로 인한 출산 사실을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라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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