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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조 예산'에도 쓸돈 빠듯...'가불정책' 또 나오나

박종오 기자I 2016.08.09 17:01:52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내년도 정부 예산이 사상 최초로 4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당정이 청년 일자리 확충,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나랏돈을 집중 투입하는 등 재정 확장 기조를 내년에도 이어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선이라는 ‘빅이벤트’로 고려한 정치적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9일 정계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3~4%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올해 정부 본예산(총지출·추가경정예산 미반영)은 386조 4000억원이다. 당정 합의대로라면 내년 예산 규모는 총 398조~402조원 수준이 된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이날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 정도 수준이면 내년에도 올해처럼 재정 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정부는 작년 9월 내놓은 5개년 단위 재정 계획인 ‘2015~201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2.6%로 계획했었다. 이보다 1%포인트 정도 돈을 더 풀겠다는 것이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올해 좋았던 세수 여건이 내년에도 유지될 걸 감안해 정부가 재정 건전성 기조는 유지하되, 지출을 좀 더 늘려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본예산 기준 3~4% 증가율(전년 대비)이 실질적으론 넉넉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같은 증가율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올해(2.9%)에 이어 둘째로 낮은 수준이다. 2014년 예산은 전년 대비 4%, 2015년에는 5.5%가 늘어난 바 있다. 올해도 정부가 추진 중인 11조원 규모 추가 경정 예산안을 반영하면 실질 총지출 증가율은 전년 대비 5.3%로 껑충 뛴다. 내년에는 이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적은 규모로 예산이 늘어나는 셈이다.

복지 지출처럼 정부가 법 개정 없이 줄일 수 없는 ‘의무 지출’이 급증해 경기 대응 등 다른 데 쓸 돈이 넉넉지 않은 여건이기도 하다. 의무 지출은 올해 전체 예산의 46.7%를 차지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5~2019년 총지출 중 의무 지출이 연평균 6.7%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도 예산 증가율을 2배가량 웃도는 규모다. 한 재정 전문가는 “확장 재정이라고는 하지만, 법정 복지 지출 증가분 등을 고려하면 결국 다른 부분 지출을 억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재정 확장·경기 부양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내년에도 추경 같은 ‘가불 정책’에 손을 벌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부 지출의 성장 기여도는 2014년 0.3%포인트(경제 성장률 3.3%), 지난해 0.8%포인트(성장률 2.6%) 등으로 매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법인세·고소득자 소득세·면세자 축소 등 증세 논의가 쏙 빠져있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계속 늘어나는 예산 소요를 충족할 근본적인 재정 확충 방안은 의논을 미루고만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날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5% 이내, 관리재정수지는 GDP의 3% 이내로 묶는 내용을 담은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돈 쓸데는 많고 나올 구석은 마땅찮은데 빚내선 안 된다는 의무 조항을 법에 명시하겠다는 이야기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복지, 통일 등 재정 소요가 많아 정부 빚이 굉장히 빨리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늘어나는 지출을 억제하긴 어려우므로 결국 다음 정권에서 증세 논의를 본격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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