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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군에게 이번 실험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해준 그 노인은 지난 200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히데키 시라카와(78) 일본 도쿄공대 명예교수. 과학자를 꿈꾸는 나 군은 “노벨상 수상자와 같이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맞아 한국 학생들이 노벨상 수상자와 같이 실험을 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한국을 방문한 노벨상 수상자 중 대중강연이나 간담회가 아니라 이번처럼 학생들과 실험실에서 어울린 것은 전례가 없다.
시라카와 교수는 한림원 기념식 참석을 위해 한국에 올 때 ‘강연 대신 실험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 이 프로그램을 하게 됐다고 한다. 78세의 세계적인 과학자는 흰 가운과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실험실에 들어왔다.
이날 실험은 2차전지에 활용되는 ‘전도성 고분자 폴리머’를 합성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는 한국과학영재학교와 세종과학고, 경기북과학고, 인천 송도고, 세종대 등 고등학생과 대학생 총 36명이 참여했다. 소문을 듣고 세종대 대학원생들과 교수들도 방문했다.
시라카와 교수는 한국 학생들에게 “이 곳에서 여러분과 실험을 같이 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그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나에게 질문을 달라”고 하자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세종대 화학과 윤서희(23·여) 씨는 “고분자 PET는 재활용이 어려워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데 재활용을 쉽게 하는 과학적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과학영재학교 배서희(19·여) 양은 “다음 주 수시시험이 있지만 오늘 이 자리를 찾아 왔다”며 “노벨상 수상자가 어린 학생들과 함께 하겠다고 나선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시라카와 교수는 “젊은 학생들이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다양한 실험을 많이 해야 한다”며 “나는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교실에서의 수업도 중요하지만 과학에서는 실험과 실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라카와 교수를 도와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정오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나도 연구를 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와 실험을 한 적은 없다”며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번 실험이) 단순한 강연보다 훨씬 효과가 높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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