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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악당과 싸우다‥악당과 닮아간 대통령

안승찬 기자I 2016.05.10 12:59:08

'필리핀판 트럼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당선
범죄와 '피의 전쟁' 예고..인권문제 등 논란 일듯

필리핀의 대통령에 당선된 로드리고 두테르테 시장(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악당은 잔혹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비열한 방법을 다 쓴다. 악당을 맞서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악당이 되는 것이다. 목적과 결과는 악당을 소탕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을 따져보면 어느새 악당과 닮아가는 역설을 낳는다.

9일(현지시간) 실시된 필리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로드리고 두테르테(71) 다바오시(市) 시장도 이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현지 ABS-CBN 방송에 따르면 야당 PDP-라반 소속 후보 두테르테 시장이 1495만 표를 얻어 집권 자유당(LP) 후보 마누엘 로하스(58) 전(前) 내무장관(896만 표)을 600만 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다.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부터 뜨거운 논란을 몰고 다녔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은 사형제도가 폐지됐지만 두테르테 시장은 취임 6개월 내에 모든 범죄를 근절하겠다며 “범죄자를 처형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정도로 끝이 아니다. 그의 말은 섬뜩하다.“범죄자 10만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마닐라만에 버리겠다”고 했고 “피비린내나는 대통령 자리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두테르테 당선자 선거캠프 관계자는 “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처 의지를 밝힌 것이지 모든 범죄자를 즉결 처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그가 범죄 소통을 위해 초법적인 행위를 일삼았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강력범을 상대하던 검사 출신의 두테르테는 다바오시 부시장을 거쳐 다바오시 시장에 당선된 이후 무려 7차례 선거에서 내리 이기며 22년간 디바오시 시장 자리에 오른다. 그는 검사시절 강력범을 상대하듯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을 치른다.

결과는 좋았다. 필리핀 다바오시는 범죄가 들끓던 도시로 유명했지만 두테르테 시장을 거치며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가 탈바꿈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선 숱한 인권유린 논란을 낳았다.

두테르테 시장은 ‘자경단’이라는 비밀 조직을 운영하며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마약상 등 범죄자를 직접 처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1700명을 죽였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이를 뒤집었다. 시장 재직 초기에 중국인 소녀를 유괴해 성폭행한 남성 3명을 직접 총살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테르테 당선자는 유세 과정에서 지난 1989년 다바오 교도소 폭동사건 때 수감자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에 대해 “그녀는 아름다웠다. 시장인 내가 먼저 해야 했는데..”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호주와 미국 대사가 이 발언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하자 “입을 닥치라”면서 외교관계 단절까지 경고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를 능가할 정도의 ‘막말’의 소유자다.

하지만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국민은 두테르테 시장을 선택했다. 필리핀은 지금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필리핀에서 지난해 상반기 발생한 살인, 강간, 절도 등 중대 범죄는 35만여건으로 2014년에 비해 37% 급증했다.

마닐라에 사는 세아이의 어머니 빅토리아 몬세라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두테르테 시장에 투표했다. 우리에겐 규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당선자는 군인과 경찰이 직권 남용으로 기소되면 사면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하루 1000건의 사면장을 발부하겠다”는 말도 했다. 필리핀의 국민들은 무소불위로 휘두르는 공권력의 수혜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피해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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