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편지]32. 브렉시트에 아마존까지…英수퍼마켓 울상

박태진 기자I 2018.02.26 11:12:12
런던 임페리얼 와프 지역 테스코 매장( 출처=임페리얼 와프 웹사이트)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 런던은 모든 것이 서울보다 비싸지만 대형 마트에서 파는 식료품과 제품들은 서울보다 싸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큰 수퍼마켓 체인인 테스코의 경우1리터 짜리 우유를 0.80파운드(약 1200원), 계란 6개가 든 한 팩을 0.89파운드, 바나나 6개 묶음을 0.90파운드, 소고기 스테이크 340그램을 3.24파운드, 돼지고기 600그램을 3.40파운드 정도에 팔고 있습니다.

이밖에 씨리얼, 요구르트 및 각종 과일과 야채도 다양한 종류를 무척 저렴하게 팔고 있기 때문에 외식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식사를 해결한다면 한국보다도 저렴하게 먹거리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영국에서 저가 수퍼마켓 체인으로는 독일계 ‘알디’와 ‘리들’이 대표적이며, 중간 가격대 체인으로는 영국계 ‘테스코’와 ‘세인즈버리’, 고급형 수퍼마켓 체인으로는 영국계 ‘웨이트로즈’와 ‘막스앤스펜서’가 꼽힙니다. 이밖에도 아이스란드, 아스다, 모리슨, 오카도 등의 수퍼마켓 체인이 있고요.

대체로 알디와 리들은 변두리에 창고형 매장을 운영하면서 상품 종류는 적지만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제공하고 있고 웨이트로즈와 막스앤스펜서는 대체로 주택가에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매장을 꾸며 놓고 있습니다. 품질 좋은 자사 브랜드 제품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고요.

테스코와 세인즈버리는 주택가에 큰 매장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도심 곳곳에 편의점 형식의 작은 매장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국 수퍼마켓 시장 점유에서는 영국 기업인 테스코와 세인즈버리가 1,2위를 차지하고 있고요.

영국 수퍼마켓들이 제품들을 저렴하게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영국이 유럽연합에 속해 있으면서 프랑스, 독일 등 농축산 대국이 생산 또는 가공한 식료품을 관세없이 낮은 가격에 들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종종 제살 깎아먹기 식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치열한 수퍼마켓들의 가격 경쟁 덕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하면서 수퍼마켓 체인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2016년 브렉시트를 결정한 국민투표 이후 파운드화 약세로 다른 유럽지역에서 사오는 식료품의 가격이 비싸졌습니다.

이에 더해 2019년 3월 EU 완전 탈퇴 이후 전환기를 거쳐 유럽연합 지역에서 들여오는 식료품, 생필품 등에 관세를 물리게 되면 더 높은 수준의 수입물가 상승이 예상되고 결국 수퍼마켓들도 마진을 맞추기 위해 제품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가격 인상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은 발품을 팔아서라도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더 저렴하게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쓸테고요.

실제 이러한 추세는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장 브렉시트발 파운드화 약세로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올라가자 저가 수퍼마켓 선호도가 높아졌습니다.

유통업계 데이터 조사업체 ‘칸타 월드패널’에 따르면 작년 독일계 저가 수퍼마켓 체인 알디의 영국 시장 점유율은 전년 6%에서 6.8%로 올랐고, 또 다른 독일계인 리들의 점유율은 전년보다 0.6%포인트 올라 5%를 기록했고요. 같은 기간 영국 수퍼마켓 체인인 테스코의 시장 점유는 전년 28.2%에서 28%로 줄었고, 세인즈버리는 전년보다 0.3%포인트 감소해 16.4%, 웨이트로즈는 0.1%포인트 줄어 시장 점유율 5.2%를 기록했습니다.

브렉시트발 파운드화 약세, 수입물가 상승 등 부정적인 외부 환경 속에서도 소비자들에게 선택을 받고, 견고한 성장을 이어나가기 위해 영국계 수퍼마켓 체인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테스코와 세인즈버리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는 인력 감축입니다. 인력 감축으로 비용을 아껴 수퍼마켓에서 내놓는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데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올들어 테스코는 채용, 직원복지, 고객상담 부분 등에서 1700명을 감원해 15억파운드의 비용을 줄이겠다고 밝혔고 세인즈버리 역시 정확한 인원 수는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매장 매니저급 등 수천명의 감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정규직이 아닌 시간제 고용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요. 막스앤스펜서도 실적이 나쁜 14개 매장을 닫으면서 감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미국 시애틀에서 선보인 무인 수퍼마켓 ‘아마존 고’의 잠재적 영국 상륙 역시 영국 내 전통적인 수퍼마켓들을 떨게하는 요인입니다.

아마존 측이 구체적으로 영국 내 매장을 여는 것에 대한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마존이 무인 수퍼마켓 매장을 미국 다음으로 유럽에 선보이고 싶어할 것이며 유럽 시장에서는 산업 환경이 미국과 유사하고 규제가 다른 유럽 국가보다 덜한 영국을 시범 지역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리서치업체 GBH인사이트의 댄 이브스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아마존의 다음 행보는 유럽, 특히 영국에 아마존고 매장을 여는 것”이라며 “런던에 적어도 올해 안에 매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테스코, 세인즈버리, 웨이트로즈 등은 규모가 큰 매장에서는 직원이 계산해주는 계산대와 소비자가 직접 물건을 계산하는 무인 계산대를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대규모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식료품 체인 ‘홀푸드’까지 접수한 아마존이 아마존고 처럼 완전 무인 시스템을 영국 수퍼마켓 업계에 서서히 정착시키게 된다면 계산대에 직원을 고용하는 전통적인 수퍼마켓들은 적어도 인적인 비용 측면에서는 경쟁력이 뒤쳐질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브렉시트와 아마존고 등을 둘러싼 사업환경 변화에 살아남기 위한 영국 수퍼마켓들의 움직임이 더욱 분주해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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