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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법, 퍼듀파마 소유주 새클러家 파산보호 면책 '보류'

방성훈 기자I 2023.08.11 15:37:36

파산법원이 결정한 60억달러 피해보상 합의 보류
"재산 지키려고 파산법 악용" 법무부 요청 받아들여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퍼듀 파마의 실소유주 새클러 가문의 60억달러(약 7조 9300억원) 피해보상 합의 결정을 보류토록 했다. 새클러 가문이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파산보호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퍼듀 파마는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과잉 제조·유통으로 미국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뒤 대규모 소송을 당해 파산보호를 신청한 제약회사다.

미국 코네티컷주 스탬포드에 위치한 퍼듀파마 본사 전경. (사진=AFP)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이날 퍼듀 파마와 새클라 가문 간 파산 합의를 유보해달라는 법무부 요청을 승인했다. 대법원은 양측 간 합의가 오피오이드 중독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피오이드는 1999년 이후 2019년가지 약 100만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며 미국에서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퍼듀 파마와 회사를 운영해온 새클러 가문은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의 과잉 제조 및 유통으로 피해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며 수많은 피해자와 주정부 등으로부터 수백억달러 규모의 소송을 당했다. 옥시콘틴은 중독성이 강해 마약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합의금을 감당하지 못한 새클러 가문은 2019년 퍼듀 파마의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이후 새클러 가문은 회사의 경영권 및 지분을 포기하고 60억달러 규모 재정기금을 통해 7년에 걸쳐 피해자들에게 보상하기로 주정부 등과 합의했다. 이 합의로 당시 약 2300건의 소송이 해결됐다.

파산법원은 공익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퍼듀 파마의 계획을 수용해 파산보호 신청을 승인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새클러 가문의 민사소송 책임을 면제해줬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새클러 가문이 2008~2017년 퍼듀 파마로부터 100억달러 이상을 수취했다는 파산법원의 분석을 인용하며, 이는 옥시콘틴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이라고 지적했다. WSJ은 법원 문서에 따르면 퍼듀 파마가 새클러 가문에 지급한 돈의 약 절반이 세금으로 사용되거나 사업에 재투자됐다고 부연했다.

법무부 역시 새클러 가문이 퍼듀 파마의 파산신청을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책임을 회피, 법적 보호를 남용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다며 대법원에 항소했다. 법무부는 “파산법원은 새클러 가문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를 보상해야 할) 법적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법의 맹점을 악용해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려는 재벌 가문에 책임을 묻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하버드대 로스쿨의 제러드 일리아스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파산보호를 신청한 뒤 이러한(새클러 가문과 같은) 유형의 면책 합의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희망을 찾은 많은 기업들이 있다”며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시급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파산보호 시스템의 역할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대법원은 구체적인 피해 규모 등을 청취한 뒤 오는 12월 본안 재판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판결은 내년 7월 이전에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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