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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보이지 않는 손' 있었나"…警, 수사권조정 시행령에 조목조목 반박

박기주 기자I 2020.08.07 11:15:32

법무부, 형사소송법·검찰청법 대통령령 입법예고
경찰 "시행령 해석 법무부 단독 주관, 일방기관 독주 가능성"
"검사 직접수사 범위 넓혀 법 개정 취지 무색"
제정 직전에 대거 포함된 법무부 의견, '보이지 않는 손' 의혹도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검경 수사권조정(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의 후속 작업으로 완성된 대통령령 입법예고안에 극렬한 반대의 뜻을 밝혔다. 올해 초 개정된 두 법안의 취지가 검찰개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시행령에 포함된 일부 독소조항은 이러한 법 개정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논의에 포함되지 않았던, 법무부의 의견으로 추정되는 조항들이 지난달 중순 이후 대거 반영된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경찰청 전경(사진=이데일리DB)
경찰, 시행령에 조목조목 반박…“법무부 단독 해석, 일방 기관 독주 가능성”

법무부는 7일 오전 수사권 개혁을 위한 개정 형사소송법, 검찰청법의 대통령령 등 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이는 법 개정 직후 지난 2월부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단장으로 한 후속추진단에서 마련한 하위법령이다.

이번 시행령에 대해 경찰 측은 10여가지 이유를 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경찰 주장의 핵심은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을 명시한 수사권조정이 시행령을 통해 오히려 훼손됐다는 주장이다.

가장 문제시 삼고 있는 건 수사준칙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대통령령의 해석 및 개정을 법무부의 단독소관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무부에게만 수사준칙에 대한 해석을 맡기게 되면 해석의 여지가 있는 대목은 검찰 조직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른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 경찰의 우려다.

이러한 시행령이 적용되면 검찰과 경찰 두 기관을 협력관계로 규정하고 서로 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민주적 수사구조를 만들겠다는 수사권조정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무부장관이 행안부장관과 협의해 결정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관계기관 협의는 형식적 규정에 불과하고, 형식적 협의절차만 거치면 일방의 해석·개정이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며 “상호렵력의 개정법 취지를 고려할 때 공동주관으로 지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지원(왼쪽부터) 국정원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검사 직접수사 범위 오히려 넓혔다…“법 개정 취지 무색”


수사권조정안에는 검찰의 직접수사를 최소화해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6개 범죄에 대해서만 검사가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로 한정한 것이다.

하지만 시행령에서는 검사가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 반경을 넓혀줬다. 특히 시행령 18조에서는 6개 범죄를 비롯해 경찰공무원의 범죄 등에 대한 수사를 제외한 범죄는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에 이송해야 한다고 명시하면서도 ‘압수·수색·검증 영장’이 발부된 경우엔 제외한다고 예외 조항을 달아뒀다.

경찰은 이러한 조항이 검찰에게 직접수사 제한을 풀어낼 수 있는 ‘만능열쇠’를 쥐여준 셈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영장 발부는 증거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단순한 혐의’가 요건이 될 수 있다. 구체적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제보자의 진술이나 자료 등에서 유추할 수 있는 의심사항 정도로도 발부 받는 사례가 많은 만큼 검사가 수사개시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사건에 대해서도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사실상 검사가 거의 대부분 범죄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압수수색검증 영장 발부를 검사의 사건이송 예외로 규정하는 것은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를 무제한 확대하기 때문에 반드시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검사의 수사를 시작할 수 있는 6개 범죄에 마약 및 사이버범죄를 포함한 것 역시 문제 삼았다. 시행령에 따르면 마약 수출입범죄는 경제범죄의 하나로, 사이버범죄는 대형참사의 하나로 포함된다. 법률의 위임 한계를 벗어나 6개 범죄유형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범죄를 끼워 넣어 검사 수사개시 범죄의 범위를 확대했다는 설명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마약범죄 및 사이버범죄를 포함하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초과해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를 부당하게 확대하는 것”이라며 “관련 국가 인력 및 예산의 낭비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해당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에 180도 바뀐 시행령…‘보이지 않는 손’ 있었나

경찰 내부에서는 초기 논의과정에선 없었던 논란이 될 수 있는 조항들이 다수 포함된 것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시행령은 지난 2월부터 법무부와 경찰을 산하에 둔 행정안전부, 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과 함께 오랜 시간 협의를 거쳐왔다. 회의만 28회, 서면제출은 수십차례에 달했다는 설명이다.

7월 들어 공식 회의를 진행하진 않았는데, 7월 중순 이후 갑자기 법무부의 의견이 많이 들어간 조항들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 관계자는 “논의과정에서 (이건 포함시키면) 안된다 했던 부분들이 막판에 많이 들어왔다”며 “그게 왜 들어왔는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입법예고 기간 중 시행령 수정을 위해 적극 나설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 중 현장 경찰관과 국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개혁 취지에 따른 입법적 결단이 제정 법령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후속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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