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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배우의 침묵 속 수어 연기…가슴 뭉클한 '우리 읍내'

장병호 기자I 2023.06.22 13:27:53

22일 개막하는 국립극장 제작 무장애 연극
극작가 손턴 와일더 대표작, 임도완 각색·연출
농인 배우 2명·청인 배우 14명 함께 무대 올라
"장애 관계 없이 삶의 소중함 보여주는 작품"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 위에 한 명의 배우가 서 있다. 미국 극작가 손턴 와일더의 희곡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연극 ‘우리 읍내’의 한 장면. 주인공 현영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다 느낀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언론 시연회. (사진=국립극장)
다른 공연이라면 배우의 절절한 목소리를 들어야 할 장면. 그러나 이 공연에선 침묵이 극장을 가득 채운다. 무대에 선 배우는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 배우 박지영. 침묵 속에서 보여주는 수어 연기가 목소리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개막 전날 열린 언론시연회에선 객석에서 눈물을 참지 못하고 훌쩍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22일부터 이곳에서 공연하는 ‘우리 읍내’는 국립극장이 제작하는 무장애(배리어 프리, Barrier-free) 공연이다. 원작은 손턴 와일더가 1938년 발표해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 미국 뉴햄프셔주의 작은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던진다.

이번 공연은 ‘신체극의 대가’로 불리는 연출가 임도완이 각색과 연출을 도맡았다. 원작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 작품의 시대적·지역적 배경을 1980년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으로 옮겨왔다. 여기에 원작 속 에밀리 가족을 장애인 가족으로 설정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배우들의 구성도 색다르다. 농인 배우 2명이 청인(음성언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비장애인) 배우 14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수어로 연기를 주고받는다. 수어 통역사 5명, 음성 해설사 1명도 이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배우들과 함께 극을 이끈다. 자막은 물론 FM수신기를 통한 음성해설도 제공해 기존 연극과는 전혀 다른 감상 경험을 제공한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언론 시연회. (사진=국립극장)
작품은 1막은 마을의 평범한 하루, 2막은 인물들의 성장과 결혼, 3막은 죽은 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잊고 지내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만든다. 1막과 2막은 극적인 사건 없이 소소한 일상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3막에 이르면 그동안 보여줬던 소소한 일상이 사실은 매우 특별하고 의미 있는 순간들임을 돌아보게 된다. 국립극단 ‘스카팽’으로 재치 넘치는 연출을 보여준 임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연출 스타일로 작품의 메시지를 깊이 있게 담아낸다.

임 연출은 개막 전날 가진 언론시연회에서 “무장애 공연은 특별할 것 없다.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는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라며 “농인과 청인이 같이 연기한다는 특별한 의미보다 일상 속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영이 극 말미에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말하는데, 그 말처럼 이 작품은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모른다는 걸 잘 보여준다”며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경청하려고 한다면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배우 안창현이 현영과 사랑에 빠지는 민규 역으로 출연한다. 박지영, 안창현 외에도 권재원, 정은영, 양주현, 성원, 이정은, 임채현, 구본혁, 김우경, 김미령, 윤진희, 이상일, 한지훈, 이승우, 김우중 등이 출연한다. 음성 해설 하승연, 공연 수어통역 박미소, 변정현, 성지윤, 이미숙, 조유나 등이 함께 한다. ‘우리 읍내’는 오는 25일까지 공연한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리 읍내’ 언론 시연회. (사진=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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