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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K워치]'불확실하다'를 확실하게 말한 이창용 총재의 소통…그 다음은

최정희 기자I 2022.07.15 12:00:00

7월 기자회견에서 '불확실성'만 18번 발언
작년 8월부터 금리 1.75%포인트 올렸는데..
물가상승률 억제효과 1%포인트도 안 돼
불확실성 속 금리 인상 고통 커지고 있어
'물가'로 금리 인상 필요하다면 효과 점검 빨리해야
국민 '고통' 커지고 있어 '대국민 설득'도 필요

2022년 7월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총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불확실성’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3일 한은 역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한 후 기자회견에서 ‘불확실성’이란 단어를 열 여덟 번이나 꺼냈다. 이날 총재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총재가 밝힌 기본 시나리오에는 현실화될지가 알 수 없는 많은 전제들이 깔려 있었다.

물가 고점 근거는 ‘시장이 그렇게 봐서’…경기도 불확실

이 총재는 물가가 3분기말, 4분기초에 고점을 찍고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겠다고 비교적 명확하게 밝혔지만 이런 기본 시나리오를 전제로 정책 방향이 양쪽으로 열려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악화돼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거나 그와 다른 방향으로 전 세계 경기침체가 더 커져서 경기, 물가상승 속도가 떨어지면서 베이스라인에서 유연하게 대처해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물가가 3분기말, 4분기초에도 고점을 찍지 않고 더 높아지면 추가 빅스텝이 나올 가능성도 열어두고 경기침체가 더 커져 물가도 떨어지면 금리 동결 뿐 아니라 금리 인하까지도 원론적으론 열어둔 셈이다.

물가는 더 오를 것 같은데 물가가 언제 잡힐지, 경기는 둔화되는 것 같긴 한데 잠재성장률(2%)보다는 높을지, 낮을지조차 불확실하다는 얘기다. 3분기말, 4분기초 물가가 고점일 것이라고 말하는 근거도 유가 선물 가격에 반영된 연말과 내년 숫자가 배럴당 90달러, 80달러 중반대로 떨어져서, 즉 시장이 그렇게 봐서이지 명확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우크라 전쟁에 서방 국가의 제재가 계속됐으나 러시아는 중국, 인도 등에 천연가스를 팔아 하루 전쟁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로 별 탈이 없다. 우크라 전쟁만 보면 유가가 떨어질 이유보다 러시아의 공급 중단에 유럽 가스 대란이 현실화돼 유가가 급등할 변수가 더 커 보인다.

심지어 경기가 어떻게 될지 쉽게 예견할 수 없다며 이 총재는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많아 한 두 세달 지켜보면 한은 경기 예측이 낙관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보다 명확해지고 거기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8월과 10월까지는 0.25%포인트씩 금리를 인상하되 그 뒤는 땅을 밟아가며 움직일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빅스텝까지 동원한 금리 인상…물가상승 억제 효과 1%p도 안돼

문제는 그렇게 불확실한데도 ‘금리 인상’은 역사상 세 번 연속 이뤄져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점이다.

한은은 작년 8월부터 올 7월까지 약 1년간의 기간 동안 기준금리는 1.75%포인트 올렸다. 그 기간 동안 분명한 것은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커졌고 유동성이 줄면서 주식 가격이 추락했고 부동산 가격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분명하지 않은 점은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얼마나 잡았느냐는 점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라는 칼이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면 그동안의 금리 인상 효과가 어떻게 물가에 반영됐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한은이 올 3월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1분기부터 2021년 4분기까지 주요 18개국 패널자료 분석 결과 금융완화기 때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물가상승률은 0.11%포인트 하락한다. 이를 고려하면 1.75%포인트의 금리 인상으로 물가상승률은 0.77%포인트, 즉 1%포인트도 못 낮췄다. 다만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수축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물가상승률 억제 효과는 이보다 더 커졌을 가능성도 있다.

한은은 당시 보고서에서 “기준금리 인상 효과를 점검한 결과 경제성장과 물가 등 실물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는 현재로선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 뒤로 물가 급등 억제를 위해 금리는 더 빠르게 큰 폭으로 올렸는데 한은 스스로 밝혔듯이 물가에 대한 파급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면 정책 효용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금리로 물가를 낮추는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해도 금리 인상밖에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금리 인상’에 따른 고통을 감내할 각 경제주체들을 향해 ‘대국민 설득’이라도 강화해야 한다.

더구나 앞으로의 금리 인상은 한은이 너무 낮은 금리를 ‘정상화’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통화정책 방향에선 ‘완화 정도를 조정하겠다’는 문구가 빠졌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2.25% 기준금리는 중립금리 하단 정도에 온 것”이라며 “그렇게 보니까 완화 정도 조정한다는 표현을 계속 쓰기보다 지금부터는 금리를 올린다, 내린다는 표현으로 바꾸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앞으로 한 두 번 금리를 올려도 ‘긴축’은 아니다”고 했지만 2.25%가 중립금리 하단 범위에 속하는 만큼 보는 시각에 따라 이미 ‘긴축’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금리 인상이 장기적 시계에서 경제성장률을 갉아먹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앞으로 금리 인상이 가져올 희생의 폭이 커진 만큼 금리 인상이 ‘물가’를 잡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경기와 물가에 대한 판단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래서 금리를 얼마나 더 올릴 것인지 등에 대해 세세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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