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의 IT세상읽기] 슬랙 매각과 플랫폼 주도 경제

김현아 기자I 2020.12.06 17:40:20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재택근무가 늘자 기업에서 쓰는 협업툴 시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협업툴이란 임직원들이 메신저, 이메일, 화상회의 등을 이용해 직접 만나지 않고도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돕는 소프트웨어(SW)입니다.

그런데 지난 2일 들려온 업무용 메신저 업체 슬랙의 매각 소식은 앞으로 기업대상 커뮤니케이션 SW 시장이 더 치열해지리라는 것을 확인해줬습니다.

세계 1위 고객관계관리(CRM) SW 회사인 미국 세일즈포스가 업무용 메신저 슬랙을 277억달러(약 30조6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이죠. 이제 ‘세일즈포스+슬랙’ 군단은 오피스 프로그램(마이크로소프트 365)에 메신저 팀즈를 무료로 얹어 파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규모의 경쟁을 벌일 태세입니다.

슬랙은 오픈플랫폼 기반의 개방성을 무기로 윈도 중심으로 돌아가는 MS 팀즈를 공격해왔지만 갈수록 밀리는 형국이었습니다.

슬랙은 참 대단하죠. 카카오톡 단톡방처럼 멤버들을 초대해 채널을 만들어 대화하는 구조이지만 ▲비공개 채널로 설정하지 않으면 모든 채널과 대화 내용은 조직내 모든 사람이 검색해 볼 수 있고(빠른 소통 가능, 과거 이력 검색 가능)▲오픈플랫폼이어서 구글드라이브 등 기존 업무용 솔루션들과 연결돼 편리합니다.

슬랙의 이 같은 ‘개방성’과 ‘혁신성’에 대한 자신감은 MS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슬랙은 MS가 팀즈를 출시한 2016년, 뉴욕타임스에 ‘친애하는 마이크로소프트(Dear Microsoft)’라는 제목의 광고를 내고 MS에 ‘중요한 건 제품의 기능이 아니고, 오픈 플랫폼이 꼭 필요하며, 애정을 갖고 이런 작업을 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사진 AFP)


하지만 IDC가 2년 전 발표한 글로벌 협업툴 시장 점유율을 보면 MS가 30.4%로 1위, 슬랙은 11.7%로 2위를 기록하는 등 슬랙이 밀렸습니다.

바로 오피스를 무기로 한 MS의 플랫폼 효과, 특히 온라인 구독기반 오피스 프로그램인 마이크로소프트 365에 팀즈를 무료로 함께 제공하는 전략에 힘을 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개방성을 무기로 협업의 본질에 집중한 슬랙이 거대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MS의 영업력에 밀렸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세계 1위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세일즈포스 품에 안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미국의 마칸 델라힘 반독점 법무차관은 스탠포드 대학에서 열린 반독점 워크숍에서 “MS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슬랙은 업무 커뮤니케이션 솔루션을 더 잘 개발한 기업”이라며 “슬랙이 기업공개까지 했던 건 건강한 경제를 만든 벤처캐피털 시스템의 한 예”라고까지 자랑했지만, 슬랙이 세일즈포스 품에 안기면서 작은 기업이 빅테크를 상대로 홀로 전쟁을 벌이는 건 쉽지 않다는 현실이 재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인재도, 질 좋은 데이터 보유량도, 영업력도 밀리는 스타트업들이 빅테크 기업들을 상대하긴 쉽지 않죠.

우리나라만 해도 토스, 카카오페이, 네이버파이낸셜, NHN페이코 등이 올해 하반기에만 400명 가까이 개발자 등 IT 인력을 모으면서, 수십 개에 달하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당장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라고 합니다.

데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데이터댐이나 데이터거래소를 만들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들이 비식별 데이터들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기업들이 데이터를 중소기업에 나눠줘도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4일 (사)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강준모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박사는 “구글이 18개월 이상 된 데이터를 폐기하기로 입장을 바꿨듯이 많은 데이터량이 모인다고 반드시 데이터의 질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스타트업을 위한 데이터 개방·공유 정책은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 정도만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누구는 그러더군요. 그래도 슬랙은 출구 전략이라도 있지 않았느냐고요. 아마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 전 세계 플랫폼 기업들과 경쟁하면서도 투자받거나 대기업에 인수되기도 쉽지 않은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더 걱정된다는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도 한국의 스타트업들 중에는 제2의 네이버, 제2의 카카오가 될 기업은 있겠지요. 개인적으로 그런 기업중 일부는 블록체인에서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미들맨(중간 서버 관리자)을 없애는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성 때문이죠. 스타트업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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