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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원자력’이라고 하면 주로 발전(전기생산)을 떠올리지만 실제 원자력 사용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종자나 작물 등에 방사선(주로 감마선)을 가해 신품종을 만드는 ‘방사선 돌연변이 육종기술’이 대표적이다.
방사선은 물질을 쉽게 이온화하거나 투과할 수 있어 생물이나 소재에 쪼이면 유용한 성질을 가진 새로운 물질이나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 방사선연구소에 밭과 비닐하우스가 많은 이유이다.
◇방사선으로 만든 ‘숙취해소 음료’·‘실내화분용 무궁화’
도착하자 연구소에서 자체 개발한 숙취해소 기능성 음료인 ‘아치미’를 내놨다. 이 음료는 기존 블루베리 작물에 방사선을 장기간 가해 ‘간 기능 보호성분’(C3G)을 2배 이상 높인 돌연변이 블루베리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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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50㎝에 불과한 돌연변이 무궁화 ‘꼬마’도 눈에 띄었다. 본래 무궁화는 1m 이상이지만 방사선 육종으로 절반 크기로 낮춰 실내에서 화분으로 키울 수 있게 했다.
이들 신품종은 모두 현재 상용화됐거나 민간기업에 기술이전을 앞두고 있다. 연구소에선 방사선 육종으로 지금까지 식량과 기능성 작물, 화훼류 등 30여종을 자체 개발해 전국 농가에 보급했다.
정부가 방사선 육종분야 활성화에 나선 것은 세계적으로 ‘종자 특허권’이 강화되면서 고유품종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기술로 한국 토종종자를 적극 개발해 이른바 ‘종자 전쟁시대’에 대비하겠다는 것.
현재 세계 20위권인 기술수준을 2020년까지 5위권으로 끌어올리고 연간 1조5000억원 규모의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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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롭지 않다”지만..국민 인식전환이 관건
그러나 국내에서 방사선 육종은 일반 국민의 인식이 낮은 뿐더러 긍정적이지도 않은 게 현실이다. 방사선은 무조건 나쁘고 위험한 것이란 인식이 팽배한 데다 방사선 육종을 ‘유전자변형작물’(GMO)과 동일하게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 이 분야 세계 1위인 중국은 전체 종자산업에서 방사선 육종이 20% 가량을 차지하지만 한국은 이 비율이 0.5%에 불과하다.
연구소의 유승호 공업환경연구부장은 “GMO는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이식해 주입하는 것이지만, 방사선 육종은 방사선을 이용해서 자연스러운 돌연변이의 발생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특히 방사선은 생물을 투과할 뿐 내부에 전혀 남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섭취해도 유해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방사선 자체의 위험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오근배 연구소장은 “방사선은 실제로 위험하다”며 “총이나 칼이 위험하지만 현명하게 쓰면 문명의 이기가 된다. 방사선을 잘 차폐해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이 기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방사선 에너지를 ‘이온화 에너지’로도 표현한다.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 등으로 일반 국민의 인식이 워낙 부정적인 만큼 식품분야가 포함된 방사선 육종산업 활성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오 소장은 “우리나라는 원자력을 너무 발전분야에만 치중해 투자한 것 같다”며 “(방사선 육종 등) 비발전 분야는 아직 고등학생 수준이다. 대학원 수준으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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