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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온 편지] 46.대도시에 퍼지는 "외부인 `No`"

함정선 기자I 2018.05.08 08:07:03
루이지 브루가노 베니스 시장이 관광명소 출입 인원을 제한하는데 사용하는 철제 개찰구를 살펴보고 있다(출처=루이지 브루가노 인스타그램)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외국 여행을 가면서 그곳 주민들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잘 하진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그곳을 여행하면서 숙박비, 교통비, 음식비, 쇼핑 등으로 돈을 쓰면서 그곳 관광업과 경제에 약간이나마 기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니까요. 여행지 주민들이 가끔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은 다만 외국인이니까 호기심에 보는 것이지 적대심이 깔린 눈빛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죠.

그러나 주요 관광 도시들을 여행할 때 나를 쳐다보는 현지인들의 눈길이 단순한 호기심이 때문이 아니라 적개심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은 왜일까요. 나의 소비와 나의 관광 행태가 현지 지역사회의 경제 구조를 조금씩 왜곡하는데 기여하기도 한다는 것을 왜 더욱더 의식해야 할까요.

유럽에서 몰려오는 이민자들 때문에 여러 사회 문제를 겪고 있다며 2016년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영국은 이 결정으로 외국인들에 대한 반감을 극명히 보여줬죠.

영국 뿐만이 아닙니다. 관광객, 디지털 유목민(일정한 직장에 출근할 필요없이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사람) 등이 넘쳐나면서 환경오염과 집값 상승 등 여러 도시 문제를 앓고 있는 유럽 도시들에서도 외부인에 대한 혐오 분위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집값을 상승시키고 주민들이 이용하던 공간을 관광객들을 겨냥한 상업 공간으로 바꾸도록 만든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역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일부 관광객들이 진상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며 짧은 여행기간 동안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면서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관광객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관광객들을 거부하는 현지인들이 관광객이 자주 이용하는 공공자전거와 관광버스 타이어를 망가뜨린 경우도 있었죠. 공공자전거의 경우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자전거를 선점하면서 주민들이 이용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통행권도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관광객 유치가 지역 상권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적극적으로 관광 진작 정책을 펴던 도시들에서 관광객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관광객들을 서서히 줄이거나 제한하는 조치들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베니스 등지에서는 “관광객은 꺼져라”라는 피켓을 든 시위도 있었습니다. 급기야 베니스는 올해 거리 곳곳에 관광객인지 현지인인지 확인하는 체크 포인트를 여러 개 만들기도 했죠. 현지인들의 거주공간과 생활공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관광객들에게 주민들이 덜 이용하는 길 등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관광명소가 너무 붐빌 경우 관광객 출입 등을 제한하기 위해 철제 개찰구도 세웠죠.

스페인 마요르카 섬 휴양지 팔마는 올 7월부터 관광객을 상대로 아파트나 연립 주택을 빌려주는 것을 금지합니다.

부동산 주인들이 숙박공유 플랫폼 등을 통해 휴가철 비싸게 임대해 주면서 전체적으로 임대료 상승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주인들이 많은 임대료를 벌 수 있는 관광객들을 선호하면서 기존에 들어와 살던 주민들이 쫓겨나고 삶의 터전을 빼앗길 상황에 처하자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팔마는 작년에 임대 허가를 받지 않은 아파트가 숙박 관련 광고를 할 경우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이 조치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죠.

국경에 구애 받지 않고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 역시 일부 지역에서는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잘사는 국가인 북유럽이나 영국 등지의 국민으로 장소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에 집값을 포함해 물가가 저렴하고 날씨가 좋으면서 환경적인 삶의 질도 높은 남부 국가로 옮겨와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소도시 등이 북부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곳으로 꼽히죠.

이들 디지털 노마드들을 주로 집에서 일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현지의 까페 등에서 일하는데 이들이 늘면서 트렌디하고 공간이 큼직큼직한 새로운 카페가 많이 생기고 전통 있는 작은 현지 카페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죠.

포르투갈 리스본대학의 아구스틴 코콜라-간트 교수는 디지털 노마드로 인한 리스본의 변화에 대해 연구 중인데 그는 BBC에 “디지털 노마드 대부분은 북부 유럽에서 오며, 포르투갈어를 말하지 못하며, 현지 주민들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자신들이 친구 또는 이웃과 즐기던 곳들을 점거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북부 유럽 사람들은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남부 유럽 현지 사람들보다 임금 수준이 높은데 그들의 집 수요가 늘어나면서 현지의 집값 상승을 야기하고 있다”며 “집 주인들은 집을 개조해 휴양 숙소로 바꾸고 있으며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 못하는 주민들을 몰아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은 디지털 노마드와 관련해 세금을 매기는 문제도 풀어야 하는 숙제죠.

만약 한 디지털 노마드가 인도네시아에 관광비자로 와서 스위스에 서버를 둔 미국회사를 위해 프랑스에서 쓰일 웹사이트를 만든다면 이 노마드에 어떻게 세금을 매겨야 할까요.

회계법인 디트로이트의 앤 마리 말리 컨설턴트는 “세금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해진 답이 없다고 말한다”며 “디지털 노마드 형태의 트렌드가 증가하게 될 경우 많은 국가에 세금 문제는 도전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거주자를 등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 정착돼 왔는데 디지털노마드 시대에는 이같은 방식에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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