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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기-1)일본경제, 비상구가 없다

전미영 기자I 2002.02.07 10:49:02
[edaily] 12년째 디플레이션의 늪 속에 빠져있는 일본 금융시장의 움지임이 심상치 않다. "셀 재팬"(sell-Japan) 심리가 확산되는 가운데 닛케이 평균주가는 이틀 연속 18년래 최저치를 경신했고 일 투자자들은 엔화표시 자산을 팔아치우기에 바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3월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실채권의 덫 일본 경제위기의 근본이 은행권의 부실채권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거의 없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일 7개은행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이 일 금융시장에 직격탄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금융감독청(FSA)에 따르면 지난해 9월 30일 기준 일 은행권의 부실채권 규모는 36조 8000억엔으로 6개월 전과 비교해 3조1000억엔이 증가했다. 이 가운데 17개 대형은행들의 부실채권은 22조5000억엔으로 전반기보다 2조5000억엔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숨겨진 부실"까지 감안하면 일 은행들의 부실채권은 100조엔을 넘어선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일본 은행들은 국제 결제비율을 맞추기 위해 여신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부실채권를 감추기 위해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들에게 유동성을 쏟아붓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결국 은행 스스로의 힘으로는 부실채권을 떨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간 일본 정책당국자들은 은행권 파산으로 인한 금융 위기설이 불거질 때 마다 "필요하다면 공적자금을 투입할 것"이란 입장을 되풀이해서 밝혀왔다. 그러나 공적자금의 투입규모와 시기에 대해 정부 내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처방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매우 큰 상황이다. ◇계속되는 경제침체 일본 정부가 경기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경기동행지수는 지난해 12월 33.3을 기록해 지난해 일년 내내 경기확장과 수축의 기준인 50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일 경기지수가 일년동안 줄곧 50 이하에 머무른 건 지난 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한편 게이단렌의 최근 조사자료에 따르면 일 경영자들은 일본이 2002회계연도에 0.6%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 경제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하며 침체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이란 비관론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일본 경제가 지난해 0.75% 수축을 기록한 뒤 올해도 1%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OECD는 내년부터 일 경제가 미약하나마 플러스 성장을 보이겠지만 구조개혁을 계속 미룰 경우 위기가 가중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구조개혁의지 "퇴색" 그러나 일본 정부가 경제위기를 타개해나갈 수 있는 자원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지속적인 유동성 공급확대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엔저유도 정책 역시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에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개혁의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어 일 경제의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의 외상경질 파문은 보수파의 득세를 보여주는 것으로 고이즈미 총리가 개혁 보다는 타협 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 일 정치평론가인 모리타 미노루는 이와 관련 "고이즈미 총리는 내각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파와의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에겐 구조개혁 보다는 정권 유지가 우선순위일 것"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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