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대출 기간이 좀 길어진다고 해서 대출 금리가 확 오르지 않습니다. 동일한 사람의 20년 대출 금리가 10년 대출 금리보다 높지만, 그 차이가 ‘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조금 비싸졌다’라고 할 정도 입니다.
대출 기간보다는 신용도가 대출 금리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돈을 더 잘 갚을 것 같은 사람이 낮은 이자를 부담하는 것입니다. 돈 여유가 있는 고액 연봉자나 자산가가 그렇지 못한 저신용자보다 낮은 이자를 받는 이유입니다.
신용도가 높지 못해도 낮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담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대출은 이런 담보가 설정되고 실행됩니다. 주택담보대출이 대표적인 경우가 됩니다.
그래서 같은 신용도의 대출자라면 주담대 금리기 신용대출 금리보다 더 쌉니다. 장기대출이긴 하지만 주택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환이 늦어지거나 연체되면 바로 압류에 들어갈 수 있는 물건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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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상황, 더 떨어진 신용대출 금리
가장 큰 요인은 금리가 낮아진 데 있습니다. 모든 금리의 원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까지 떨어졌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같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아직 높다고 하지만, 우리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입니다.
돈의 가치가 곧 금리라고 하면 그만큼 돈이 싸지고 흔해졌다는 얘기도 됩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쌓아놓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요새 예금이자율이 1%가 안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금리가 떨어졌다는 얘기는 대출자가 부담하는 이자도 적어졌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대출을 못 갚는 경우가 예전보다 적어졌습니다. 전체적으로 대출자들의 신용도가 좋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건 왜일까, 사채업자들의 불법사금융 사례를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빠르게 됩니다. 대부분의 급전 대출자들은 원금보다 살인적인 이자에 고통받곤 합니다. 이자에 이자가 붙어 대출자들을 옥죄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하락하면서 은행 대출이자율이나 국채, 회사채 등의 금리가 떨어지고, 채무자들의 신용도가 좋아졌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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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금융권 신용대출이 가능한 고신용자(1~3등급) 비중은 지난 2017년 이미 전체의 절반을 넘었습니다. 2017년 1분기 기준 54.4%(한국은행 집계)입니다. 이 비중은 5년 사이 13.3%포인트 늘었습니다.
비록 착시효과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신용도의 상승은 위험프리미엄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은행 입장에서 ‘혹시 떼일지 몰라 부과하는 금리’가 낮아진다는 얘기입니다. 고액 연봉자나 자산가는 이런 혜택을 더 보고요.
두드러진 단기채 금리 인하 효과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저금리는 은행들의 자금 도입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냅니다. 대출을 해주기 위한 자금 도입 비용을 낮춰주는 것이지요.
은행들은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해주기도 하지만 은행채라는 것을 통해 대출 자금을 마련합니다. 신용대출은 6개월짜리 은행채로, 주담대는 5년짜리 은행채로 많이들 해줍니다.
같은 은행채라고 해도 단기채라고 할 수 있는 6개월짜리 은행채가, 장기채 성격을 가진 5년짜리 은행채보다 금리 변동 폭이 큽니다. 6개월만 지나면 더 싼 금리의 은행채를 발행할 수 있다는 애기입니다. 단기채 금리가 더 싼 상태에서 금리 싸지는 속도까지 빠른 것이지요.
AAA은행채 6개월짜리의 경우 이자율이 연율 기준 0.6%입니다. 2~3년 사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반면 5년짜리는 최근 기준 1.3% 정도 됩니다. 같은 기간 절반 수준으로 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담대 대출을 위한 자금 도입 비용이 신용대출보다 비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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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시대에는 이런 장기채, 단기채 성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용대출 자체가 워낙에 금리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대출 담보 유무에 따른 금리 차이가 대출 기간의 장단(長短)에서 비롯되는 금리 차이를 압도했던 것이지요.
◇은행간의 금리 경쟁…모바일이 주도
저금리 상황에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이젠 은행이 대출 경쟁을 해야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은행 간 경쟁은 당연히 대출 금리 인하로 이어집니다.
마땅히 기업들이 많이 대출을 받아가야 하는데,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대기업은 주식시장이나 채권 시장을 통해 저리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 중 우량기업으로 분류될만한 기업들은 해외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투자를 위한 대출 수요가 과거보다 줄어든 것입니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기업보다는 가계 대출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각 개인들이 ‘보다 싸게’, ‘보다 편리하게’ 신용대출을 해갈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편하고 있습니다. 대출액 규모가 크고 소유권 이전 등기, 담보 설정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주담대보다는 수천만원을 짧게 빌려주는 신용대출 위주로 말입니다.
때마침 코로나19 시대에 모바일 신용대출 서비스도 많이 나왔습니다. 올해 신규 신용대출 잔액 중 7할이 모바일로 시행된 대출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중저 신용자들에게 ‘금리인하’ 혜택은 언감생심
그러나 이런 대출 서비스도 결국은 1~3등급 은행 대출이 가능한 사람들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이중에서도 전문직이면서 자산가인 사람들은 정말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 여유가 비교적 적은 중저신용자들도 주담대보다 싼 금리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NO’입니다. 중저신용등급 신용자들의 대출 금리는 약간 떨어진 정도입니다. 여전히 담보가 있어야 저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은행연합회 자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 6월까지 집행된 주담대와 신용대출 금리를 보면,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들의 신용대출 금리는 여전히 높습니다. 5등급 이하부터는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4등급 이하 중저신용자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무척이나 힘들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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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은행에서 대출을 못받는 사람들이 대출자로 있는 제2금융권에서는 이런 대출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쉽사리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시장 유동성이 많아져 대출 받기 쉬워졌다고 하지만, 원래부터 대출 받기 쉬웠던 고신용자들에게 해당되는 통하는 얘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전문직과 자산가들에 금리 인하 혜택이 집중된 것입니다. 반면 원래부터 대출받기 힘들었던 중저신용자들은 이런 금리 혜택에서 소외돼 있습니다.
신용도에 따라 금리가 움직이는 게 자본주의 신용사회에서는 당연한 수순이긴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신용대출-주담대 금리 역전 현상은, 고신용자와 중저신용자 간의 차이를 벌리는 ‘양극화’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금리가 낳은 또다른 양극화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