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의 비사이드IT]중저가 스마트폰 돌풍의 이면

장영은 기자I 2020.05.02 09:30:00

삼성·애플·LG 중저가폰으로 코로나19 국면 돌파
수익성 낮지만 보릿고개 넘기 위한 고육지책
소비 하향추세에 '카니발라이제이션' 우려도

때로는 미발표곡이나 보너스 영상이 더 흥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말기와 IT업계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B-Side’ 스토리와 전문가는 아니지만 옆에서(Beside) 지켜본 IT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합니다. 취재활동 중 얻은 비하인드 스토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알아두면 쓸모 있는 ‘꿀팁’, 사용기에 다 담지 못한 신제품 정보 등 기사에는 다 못 담은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삼성전자가 올해 들어 국내에 출시한 스마트폰 중 가장 저렴한 ‘갤럭시A31’(37만4000원)은 지난달 27일 사전판매 당일 반나절만에 준비한 물량이 모두 완판됐다. (사진= 삼성전자)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최근 온라인이나 신문을 통해 중저가폰에 대한 기사를 한 번쯤은 읽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중저가폰이 대세라거나 삼성전자와 애플의 중저가폰 경쟁이 치열하다는 등의 내용들이 많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업계에서 중저가폰이 이렇게 이슈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인데요. 그동안에 나오지 않던 제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쪽은 늘 고가의 플래그십(전략) 폰이었습니다.

판매량으로 본다면 중저가폰의 비중이 높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소수의 주인공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중저가폰이 주목을 받는 것은 반갑지만은 않은 현상인데요. 그렇다면 중저가폰이 뜨는 이유가 뭔지, 업계의 속사정은 어떤지를 한번 들여다 보겠습니다.

◇ 중저가폰, 수익성은 낮지만 점유율·생태계 확대 위한 선택

각 제조사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스마트폰은 소위 플래그십(전략)과 보급형으로 나뉩니다. 플래그십은 ‘깃발’이라는 어원대로 그 회사의 대표 제품입니다. 각사가 성능이나 디자인 면에서 가장 힘을 주고 있는 제품이라는 뜻이죠. 가격으로 따지면 비싼, 그러니까 프리미엄 급입니다. 보급형은 말 그대로 사양을 다소 낮추는 대신 가격을 떨어뜨려 소비자들이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판매량으로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봤을 때, 300달러 미만 스마트폰의 판매량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가량 됩니다. 비중으로 보면 단연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중저폰은 왜 전면에 나서지 않을까요.

(자료= SA)
유통업계쪽에 비유를 하자면 플래그십 스마트폰이 명품 구스다운이나 캐시미어 코트 같은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업계에서나 고가 제품이 성능도 디자인도 좋지만 통상 가격이 성능에 정확히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진도 높습니다. 그래서 유통업계에서는 ‘한 해 장사는 다 겨울에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패션쪽의 비중이 큰 백화점, 홈쇼핑, 온라인몰 등의 특성 상 마진이 높은 겨울 의류가 많이 팔려야 매출도 이익도 잘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애플의 이익률이 경쟁사에 비해 월등하게 높게 나오는 이유도 ‘프리미엄폰 전문’ 이어서입니다.이번에 나온 2세대 ‘아이폰SE’가 화제가 된 이유도 그래서였습니다. 애플이 내는 두 번째 보급형 모델이자 전작이 나온지 4년만에 출시되는 모델이라는 점은 애플의 프리미엄 전략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삼성이나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이를 몰라서 중저가폰도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요. 많이 남는다고 겨울옷만 팔 수는 없듯이 다양한 소비자들의 수요를 고려해 중저가폰이 나오고, 제조사 입장에서도 점유율 상승과 박리다매 효과를 노릴 수 있습니다.

특히 시장이 성숙할 수록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는 중저가 제품이 기여하는 바가 큽니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숙과 함께 중국 제조사들이 급성장하고, 프리미엄을 고집하던 애플이 1위에서 3위로 추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애플은 지난 2월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따라 중국 내 애플 매장을 모두 임시 휴점하면서 , 오프라인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사진= AFP)


◇ 코로나19로 주인공으로 급부상한 중저가폰

조연이었던 중저가 스마트폰이 최근 주연보다 더 주목을 받게 된 데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영향이 컸습니다. 전염성도 높고 치명률도 꽤 높은 이 바이러스는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서 수요과 공급을 모두 감소시키면서 경기 침체를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이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피하게 되면서 여행, 외식, (오프라인) 쇼핑 업계는 모두 직격타를 맞았습니다. 여기에 질병의 확산세와 전염 우려 때문에 공장 가동은 중단됐고 유가 마저 떨어지면서 관련 산업도 타격을 받고 있는 전방위적인 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민감재인 스마트폰 수요는 위축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특히 고가 상품인 스마트폰 오프라인 판매 비중이 높아 수요가 급감했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기업의 입장입니다. 무엇이든 팔아서 소비자들에게 잊혀지지 않도록 시장에서의 위치를 지키고, 적으나마 이익을 내서 힘든 시기를 넘어가야 다음을 또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중저가폰의 부상은 이같은 ‘고육지책’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폰SE의 사전판매가 예상치를 웃돌고 30만원대의 갤럭시A31이 국내 사전판매 첫날 반나절만에 완판된 것은 현재 시장의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지금 같은 불황에 일단 잘 팔린다니 좋은 소식이긴 합니다만, 일각에선 중저가 제품의 판매 호조가 상위 시장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옵니다. 애플 전문 분석가로 유명한 밍치궈 TF증권 연구원은 아이폰SE 출기로 2분기부터 아이폰11의 판매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회사 제품간 일종의 카니발라이제이션(시장잠식효과)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애플이 4년만에 내놓은 보급형 스마트폰인 ‘아이폰SE’. 국내 출시가격은 55만원부터다. (사진=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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