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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11세부터 꿈꾼 '합창' 지휘, 34년 일생에 제일 고심"

장병호 기자I 2022.12.14 08:31:56

14~16일 서울시향 베토벤 '합창' 지휘
벤스케 음악감독 사고에 '대타'로 지원사격
지휘 수락 후 4일간 호텔서 격리돼 악보 연구
"피아노도 지휘도 제가 추구하는 음악일 뿐"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34년 일생에서 제일 많이 고심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리허설룸에서 만난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김선욱(34)은 지난주 서울시향으로부터 ‘2022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 합창’ 공연 지휘 요청 연락을 받은 순간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이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향 리허설룸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선욱은 지난 6일 낙상사고를 당한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감독을 대신해 14~16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하는 ‘2022 서울시향 베토벤 교향곡 합창’ 공연을 지휘한다. (사진=뉴시스)
서울시향이 14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15~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당초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지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6일(한국시간) 오후 핀란드에 머물고 있던 벤스케 음악감독이 낙상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서울시향에 전해졌다. 김선욱은 다음날인 7일 서울시향으로부터 지휘 요청을 받았다. 한국에서의 연주 일정을 마치고 독일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때였다.

일생에서 가장 많이 고심한 이유는 시간이었다. 11일 리허설까지 김선욱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일. 촉박한 시간에도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11세 때 처음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들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1999년 12월 31일, 정명훈 선생님이 지휘하고 코리안심포니(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예술의전당 제야음악회에서 ‘합창’을 처음 들었어요. 그때도 저는 지휘를 꿈꾸던 소년이었는데, 공연장 맨 앞에서 연주를 보며 ‘이 곡을 지휘할 날이 올까’ 생각했죠. ‘합창’은 오케스트라 상주지휘자가 아닌 이상 지휘자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공연은 아니니까요.”

김선욱은 베토벤 피아노 소타나 전곡 연주를 소화한 바 있는 자타공인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또한 수없이 들은 곡이었지만, 지휘자로 접한 악보는 그야말로 “불덩어리” 같았다. 서울시향 제안을 수락한 뒤 8일부터 11일까지 4일간 호텔에서 스스로 격리된 채 악보를 연구했다. 그는 “악보 속 음표들이 주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했다”며 “3악장에서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느껴지다, 4악장에서는 인류의 형제애까지 느껴지는 신성함에 혼미해질 정도였다”고 말하며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지난 8월 서울시향 광복 77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지휘자로 나선 김선욱의 공연 장면. (사진=서울시향)
서울시향이 김선욱에게 SOS를 친 이유는 22년간 이어온 그와의 오랜 인연 때문이다. 김선욱은 2000년 서울시향의 소년소녀협주회를 통해 정치용 지휘자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을 협연하며 서울시향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여러 차례 피아노 협연으로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췄다. 지난 8월엔 광복 77주년 기념 음악회로 서울시향을 처음 지휘했고, 10월엔 피아노 협연자로 유럽 순회공연을 함께 했다. 그만큼 서울시향에 대한 이해가 빨라 지휘자로 결정했다는 것이 서울시향의 설명이다.

김선욱은 피아니스트로는 2006년 18세 나이로 리즈 콩쿠르 4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자 첫 아시아 출신 우승 기록을 세운 뒤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러나 지휘자로는 2021년 1월 KBS교향악단 공연으로 데뷔한 ‘신인’이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지휘를 할 때도 제가 추구하는 음악을 만든다는 생각 뿐”이라며 이번 공연에 대한 강한 확신을 보였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이 일어납니다. 협연자일 때는 (리허설룸에) ‘똑똑’ 하고 잠깐 들어와 차 한 잔 마시고 가는 기분이라면, 지휘자로는 하루를 집에서 보내는 느낌이에요. 그만큼 단원들과 교감하고 대화하는 작업이 너무 좋습니다. 오늘 리허설처럼만 공연한다면 좋은 연주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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