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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용익의 록코노믹스]미국 그런지에 대한 영국의 대답: 브릿팝

피용익 기자I 2020.07.25 09:10:11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미국에서 그런지(grunge) 록이 인기를 끌던 시기 영국에서는 브릿팝(Britpop) 장르가 뜨기 시작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영국에서 인기를 끌던 기타 중심의 록을 계승한 브릿팝은 미국의 그런지 신드롬에 대한 영국의 대답과도 같았다. 브릿팝이라니, 이름부터가 영국적이지 않은가! 과거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미국을 흔들어 놓았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사실 로큰롤은 미국에서 탄생했지만, 본격적인 록의 시대가 열린 이후 영국은 오랫동안 록의 종주국이었다. 비틀스, 롤링 스톤스 같은 초기 록 밴드부터 블랙 사바스,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등 헤비메탈의 선구자들은 물론, 아이언 메이든, 주다스 프리스트, 데프 레퍼드 등 ‘뉴 웨이브 오브 브리티시 헤비메탈(NWOBHM)’을 주도했던 밴드들은 모두 영국 출신이었다. 미국에서도 개러지 록, 포크 록, 사이키델릭 록 등이 1960~1970년대에 인기를 끌었지만, 대중음악사에서 큰 획을 그은 뮤지션들 중에는 유독 영국인들이 많았다.

록 음악이 미국 중심으로 재편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였다. 하드코어 펑크를 계승한 스래쉬 메탈 밴드들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글램 록의 영향을 받은 글램메탈 밴드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를 거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갔다.

특히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달한 미디어 산업은 대중음악의 판도가 미국 중심으로 흘러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음악이 세계에서 유행하는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이런 추세는 1990년대 초반 그런지 록의 열풍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커트 코베인의 자살 이후 그런지 록이 쇠퇴기에 접어든 1990년대 중반은 영국 뮤지션들에게 기회나 다름없었다. 스웨이드, 블러, 오아시스, 펄프 등 ‘빅 4’로 불리는 브릿팝 밴드들은 앞다퉈 음반을 발매하고 무대에 올랐다. 1995년 8월 블러의 싱글 “Country House”와 오아시스의 신곡 “Roll with It”이 인기 순위를 다툰 ‘차트 배틀’은 당시 영국 음악시장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그런지 록에 비해 가볍고 밝았다. 따라부르기 쉽고 귓가에 맴도는 멜로디는 기본이었다. 가사는 또 어떠했던가. 집에서 차를 마시고 식료품을 쇼핑하러 나가는 평범한 일상은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몇 년 동안 우울한 음악을 듣느라 지친 대중은 브릿팝에 열광했다. 브릿팝 밴드들의 인기는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됐다.

브릿팝이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점령한 배경에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 정책을 통해 문화예술 강국인 영국의 이미지 제고와 경제 활성화를 꾀했다.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 문양이 그려진 패션이 유행한 것도 1990년대 중반이었고, 휴 그랜트를 중심으로 한 영국 배우들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도 이 시기였다.

또 하나의 요인은 경제였다. 미국의 성장률 둔화가 그런지 록의 부흥에 영향을 미쳤던 것과 정반대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영국의 경제 호황은 브릿팝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1990년대 초 미국과 더불어 마이너스 성장까지 겪었던 영국 경제는 1995년 3.6%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존 메이저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매년 2%대 중반에서 3%대 후반의 호황을 이어갔다.

메이저 총리의 뒤를 이어 1997년 43세의 나이로 영국 총리에 취임한 토니 블레어는 사회정의와 시장경제를 결합시킨 ‘제3의 길’을 표방해 영국의 국력을 강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레어 총리의 첫 임기(1997~2001년) 동안 영국 경제는 매년 3% 이상 성장했다. 물가는 안정됐고 실업률은 떨어졌다.

다만 브릿팝의 인기는 1990년대 말 급격히 시들었다. 오아시스가 1997년에 발표한 3집 ‘Be Here Now’는 전작에 비해 저조한 판매량에 그쳤고, 비슷한 시기 블러의 음악 스타일 변화는 인기의 기반이었던 10대 소녀들의 외면을 받았다.

글램메탈이나 그런지 록의 몰락처럼 브릿팝의 쇠퇴는 갑작스러웠다.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오아시스나 블러의 흉내를 내는 비슷한 밴드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시장이 포화됐다는 진단에서부터 1997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비극적 죽음으로 인해 명랑한 분위기의 음악이 어울리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분석까지 다양하다.

브릿팝 열풍이 식은 이후에도 라디오헤드, 버브 등의 밴드가 브릿팝의 명맥을 이어갔고, 트래비스, 콜드플레이, 뮤즈 등 영국 록 밴드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과거 브릿팝의 영광을 재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20세기의 끝과 함께 록의 시대는 이렇게 저물고 있었다.

블러와 오아시스의 ‘차트 배틀’을 다룬 1995년 8월 음악 잡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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