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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장재현 감독 "호불호 각오했었다, 진보하는 게 목적"[인터뷰]②

김보영 기자I 2024.02.22 16:44:38

"호러 DNA는 아닌 듯…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에 몰두"
"하지 않았던 걸 해나가고파, 발전했단 소리 반가워"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장재현 감독이 영화 ‘파묘’에 등장하는 ‘험한 것’의 정체와 후반부의 전개를 둘러싼 엇갈린 반응들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또 전작 ‘검은 사제들’, ‘사바하’ 때에 비해 진보한 모습을 ‘파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는 취지도 전했다.

장재현 감독은 영화 ‘파묘’의 개봉일인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세대를 대표하는 톱배우들이 데뷔 이래 처음 도전한 오컬트 장르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 ‘검은 사제들’부터 ‘사바하’까지 오컬트 색채가 강한 장르 영화들로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던 장재현 감독이 5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파묘’는 개봉일인 22일 오전 이미 예매량이 36만 명을 넘어서며 심상치 않은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듄: 파트2’, ‘웡카’ 등 쟁쟁한 경쟁작들을 제친 수치이자 2024년 개봉작 통틀어 가장 높은 에매량이다. 지난 15일 개막한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세션에 초청돼 극찬을 받는 경사도 있었다.

장재현 감독은 “너무 감사하다. 사실은 흥행도 기대한다”면서도, “그것보단 극장이 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사실 감독들이 그렇게 다른 작품을 응원하지 않는다(웃음). 그런데 요즘은 극장이 워낙 어려워서 다들 응원하는 심정인 것 같다. 나 역시 요즘은 극장에 나오는 한국 영화들을 다 챙겨 보는 편”이라고 개봉 소감을 전했다.

지난 20일 시사회로 공개된 ‘파묘’는 134분의 러닝타임동안 6부에 걸쳐 스토리를 전개한다. ‘파묘’의 관전포인트 중 하나는 예고편이 공개될 때부터 예비 관객들의 궁금증을 끌어올린 ‘험한 것’의 정체다. 이 ‘험한 것’의 정체는 중반부까지 오리무중이다. 그럼에도 ‘험한 것’일 불러일으킨 불길한 징후와 이를 마주한 등장인물들의 두려움 섞인 반응, 심리 변화만으로 초반부와 중반부의 스토리를 힘있게 이끌었다는 호평이 이어진다. 그러다 이 ‘험한 것’이 후반부에 정체를 드러내면서, 급격한 국면 전환과 장르 변주로 이어진다.

대체로 오컬트 미스터리물의 미덕을 훌륭히 실천했다는 호평이 이어지나, ‘험한 것’의 정체와 후반부의 전개 방식은 일각에서 호불호 섞인 반응도 나온다.

장재현 감독 역시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엇갈리는 반응을 예상했다고. 그는 “시나리오 때부터 호불호는 사실 있었다. 저 또한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험한 것’의 비주얼을 구현하는 과정을 많이 고민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럼에도 외형을 무섭게 제작해 무서움을 유발하는 방식은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외형만 보면 얼핏 크리처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은 게 그것의 대사가 은근히 많은 편이다. 나름 생각을 거친 결과 이것이 내뱉는 대사나 생긴 이미지가 어느 정도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었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대변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이어 “신비롭게 그리고 싶었다. 시그니처 이미지와 대사를 통해 주제를 함축하는 방향을 놓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카톨릭 신부와 구마의식을 다뤘던 ‘검은 사제들’, 기독교와 불교,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한 ‘사바하’에 이어 ‘파묘’는 우리나라의 전통 무속신앙과 풍수지리학, 음양오행의 토속적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장재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며 조사 작업도 병행했다. 조사 과정에 2년~3년 정도 걸렸다”며 “‘사바하’를 끝낼 때쯤 이 소재를 하고 싶어졌다. 사실 처음엔 굉장히 하드한 호러영화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당시 대작들의 개봉이 다 밀린 상태라 마스크를 쓰고 극장에서 볼 수 있던 영화가 대부분 작가주의 영화였다. 그런 상황에 영화를 보면서 나 역시 일종의 답답함을 느꼈다. 이에 방향을 바꿔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화끈하고 체험적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영화의 방향이 바뀌면서 주인공 등 주요 캐릭터들의 구성도 많이 변했다. 장 감독은 “이 영화가 호러영화였다면 주인공이 풍수사가 아닌 묘를 옮겨달라 의뢰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라며 “생각해보면 내 전작들에서도 주인공들은 전부 문제에 처한 사람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러 간 전문가들이었다. ‘파묘’는 보다 쉽고 화끈하게 가려고 했다. 실제 무서울 만한 장면이 사실 많지 않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내가 그런 무섭고 답답한 분위기를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실제로 막상 극장에 공포영화가 개봉하면 잘 안 보러 간다. 뒷맛이 개운한 이야기를 언제부턴가 극장에선 안 보게 되더라. 내가 호러 DNA까진 아닌 것 같다”는 의외의 답변으로 눈길을 끌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만난 외신기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도 털어놨다. 장 감독은 “그 기자가 내 작품들을 다 봤더라. 그 분이 내 작품들을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이라고 표현해줬다. 내 생각도 그런 걸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엔 동아시아적인 느낌으로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에 몰두한 것 같다”고 떠올렸다. 또 “어두운 세계의 밝은 인물들에 끌리는 듯하다. 밝은 세계에 밝은 인물들만 들어가는 것도 상상이 안되지만, 어두운 세계에 어두운 인물만 들어가는 건 더 상상이 안된다”고도 덧붙였다.

‘파묘’를 통해 듣고싶은 반응을 묻자 장재현 감독은 “이 사람이 했던 걸 하지 않았다는 평을 듣는 게 기분 좋다. 또 발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라며 “감독은 진보해야 한다는 게 나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K오컬트 장인이란 세간의 수식어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남겼다. 장재현 감독은 “불행한 게 이번에 베를린을 갔더니 외국엔 ‘오컬트’란 장르가 없더라. ‘미스터리 포 오컬트’라는 표현을 썼다. 나도 그에 동의한다”며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영화같다. 호러라 생각하고 만들진 않았지만 관객들이 그렇게 봐주신다면 물론 그것도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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