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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사람 그리고 법률]'기도 세리머니' 손흥민, 법률상 책임 있을까

이성기 기자I 2019.11.09 08:15:00

`운동 경기 중 부상 손해배상 여부` 대법 판례도
형법상 `위법성 조각사유`…민사상 책임도 묻기 어려워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법무법인 충정 김시주 변호사] 평소에 특별히 스포츠 경기에 별 관심이 없는 터라 야구나 축구 경기를 굳이 찾아 보지 않는 편이다. 며칠 전 아침 포털사이트 `많이 본 뉴스`란에 `라커룸에서도 고개 숙인채 울고 있었다, 큰 충격 받은 SON`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떤 내용인지 살펴 보았더니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에버틴과의 경기에서 상대팀 미드필더인 안드레 고메스의 공을 빼앗기 위해 백태클을 시도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메스가 토트넘의 세르주 오리에와 부딪혀 발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게 되자, 손흥민 선수가 큰 충격을 받아 라커룸에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었다.

대학 시절 형법 시간에 `위법성 조각사유`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위법성 조각사유란 법조문상의 범죄 요건(이른바 구성요건)은 충족되나, 그 행위의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정당 방위나 사회 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 등이 대표적인 위법성 조각사유이다. 형법 교과서에 언급되는 위법성 조각사유의 흔한 예로 권투 경기가 있는데, 선수 상호 간에 폭행과 상해 행위가 있지만 이들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권투 경기가 스포츠로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한다거나 또는 `피해자의 승낙`이 있어 위법성이 조각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경기 중 발생하는 상해, 폭행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 형사상 처벌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가해 선수의 민사상 책임까지 면책되는 것일까. 또 권투 같은 격투 경기는 원래부터 상호 간 폭행을 전제로 하니 그렇다 쳐도, 축구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 대한 폭행은 경기 규정상 용납되지 않는데 반칙행위로 선수가 다쳤다면 최소한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들어 혹시나 이런 사례가 있을까 판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운동 경기 중 부상에 따른 손해배상 여부가 쟁점이 된 판결을 두 건이나 찾을 수 있었다.

판례의 사실관계는 아래와 같다.

1. 농구경기 중 사고(대법원 2011. 12. 8. 선고 2011다66849 판결)

A가 친구인 B 등과 야외 농구장에서 반 코트만 사용해 경기를 하던 중,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 뛰어올라 공을 잡고 내려오다 A 등 뒤에 서 있던 B의 입 부위를 오른쪽 어깨 부위로 충격해 B의 앞니가 부러지는 등의 부상을 입음

2. 축구경기 중 사고(대법원 2019. 1. 31. 선고 2017다203596 판결)

골키퍼를 맡은 A가 골문 앞에서 공을 쳐내기 위해 다이빙 점프를 하고 착지하다가 상대팀 공격수인 B와 충돌, B가 목척수 손상 등의 상해를 입음

두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비슷한 판단을 하였는데 요지는 아래와 같다.

“운동 경기에 참가하는 자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경기자 등이 다칠 수도 있으므로, 경기 규칙을 준수하면서 다른 경기자 등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신의칙상 주의 의무인 `안전배려 의무`가 있다. 그런데 권투나 태권도 등 상대선수에 대한 가격이 주로 이루어지는 형태의 운동 경기나 다수의 선수들이 한 영역에서 신체적 접촉을 통해 승부를 이끌어 내는 축구나 농구 같은 형태의 운동 경기는 신체접촉에 수반되는 경기 자체에 내재된 부상 위험이 있고, 경기에 참가하는 자는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위험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경기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운동 경기에 참가한 자가 앞서 본 주의 의무를 다하였는지는 해당 경기의 종류와 위험성, 당시 경기진행 상황, 관련 당사자들의 경기규칙의 준수 여부, 위반한 경기규칙이 있는 경우 규칙의 성질과 위반 정도, 부상의 부위와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되 그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이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두 사건 모두에서 가해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농구와 축구 같은 신체적 접촉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경기 중 발생한 사고의 경우 부상 위험이 있고 그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부상이 발생했다면 현실적으로 가해 상대방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손흥민 선수가 고메스 선수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법적 책임 여부를 떠나 큰 부상을 당한 고메스 선수의 신체적·심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손흥민 선수 역시 상대 선수의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부디 두 선수 모두 빠른 시일 내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전처럼 멋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 김시주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32기△2006년 변호사 개업(법무법인(유한) 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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