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기본소득]④"당장 기본소득 하자는 건 포퓰리즘"

이정훈 기자I 2020.10.22 05:19:00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인터뷰
"보편적 기본소득 논의 국가 없어…일부 국가만 실험"
"기본소득 정책효과 낮아…취약계층 지원이 급선무"
"기존 사회보장제도 지속가능하게 손질부터 해야"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하더라도 무엇을 위한, 또 누구를 위한 기본소득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여전히 비수급 상태인 노인들이 많고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취약계층이 많습니다. 이들을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최우선입니다. 현재 논의되는 기본소득은 포퓰리즘에 불과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정책연구실 내 공적연금연구센터에 소속돼 있는 윤석명 연구위원은 19일 이데일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위원은 “사실 아직까지 우리나라처럼 보편적 기본소득을 논의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핀란드의 경우 소득세로 인해 저소득이면서 근로하는 사람에 비해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의 소득이 더 많아지는 문제가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기본소득 실험이었고, 스위스 등 다른 나라들도 오랫동안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하다보니 다른 복지혜택을 다 없앤 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사회적 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 실험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국가와 우리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윤 위원은 “국내에는 아직도 비수급 대상인 노인들이 많은데다 이런저런 이유로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며 “이런 취약계층들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최우선적으로 정책을 펴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을, 또 누구를 위한 기본소득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만약 100조원의 재정이 있다고 할 때 이를 잘 활용하면 빈곤율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지만, 기본소득으로 고루 나눠주면 그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윤 위원은 기본소득의 정책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국내총생산(GDP)대비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없애고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재정지출도 줄이고 빈부 격차도 줄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 국가에서는 기본소득이 빈곤을 더 늘린다는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또한 “국내 평균적인 노인 빈곤율은 높지만, 국내에도 고액자산가와 특수직역연금 등을 받아 부유한 노인들도 많다”며 “후세대에 부담을 줘 가면서까지 이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보다는 기본소득 만큼도 충족하지 못하는 노인이나 최저임금 이하로 버는 젊은이 등에 우선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기본소득제도의 필요성 자체를 전적으로 부인하진 않았다. 윤 위원도 “앞으로 4차산업혁명이 획기적으로 진전돼 사람들의 일자리가 크게 줄어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해 경제를 돌아가게 할 필요가 있을 때 기본소득을 논의할 순 있을 것”이라면서 “그런 시대에 대비해 준비할 필요는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본소득 도입보다는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손질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도 지적했다. 윤 위원은 “우리의 4대 보험이나 장기요양보험, 기초연금 등 어느 것 하나 지속 가능한 것이 없다”며 “이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고 나서 기본소득 논의를 해도 늦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정치인들이 국민을 선거에서의 표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윤 위원은 “이미 긴급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에서 국민들은 국가가 지원하는 현금에 대해 맛을 본 뒤로 기본소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고, 정치인들은 이런 방식이 표의 확장성에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며 “특히 한 두 명이 이런 방식으로 표를 얻으면서 다른 정치인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으니 자연히 포퓰리즘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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