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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기본소득]③`짝퉁` 논란까지, 난립하는 기본소득

양지윤 기자I 2020.10.22 05:13:00

핀란드·네덜란드 사회보장 대상자에 지급
한국 기본소득은 죄다 청년에 초점
복지 사각지대, 직업군·소득수준에 따라 중층적
청년기본소득에만 집중 다양한 논의 가로막아…정쟁도구 전락 우려도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청년기본소득 대(對) 청년기본소득`

국내에서 벌어지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주로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자산과 소득, 일 활동과 관련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 정의에 비춰보면 해외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 정책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신지혜(가운데) 기본소득당 상임대표가 지난 9월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용혜인 의원.(사진=뉴시스)


최근 기본소득 실험을 시행한 핀란드는 25~58세 사회보장급여 대상자, 네덜란드는 나이 제한 없이 사회보장수급자,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18~65세 빈곤층을 통해 보편성이라는 조건을 충족시켰다. 핀란드와 네덜란드는 유급고용에 대한 참여도를 높이고 사회보장에 대한 의존을 줄여 복지 수혜자들이 노동시장에 적응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온타리오주는 빈곤 문제 개선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한국은 청년기본소득 정책이 크게 세 가지 버전으로 압축된다. 서울시는 주민등록 기준 서울시 거주민에 만 19~29세, 기준 중위소득 150% 미만, 비재학생과 정부사업 미참여자라는 조건에 부합하면 2~6개월간 매달 50만원을 지급한다. 경기도는 만 24세 미만 청년 중 3년 이상 계속 거주 또는 합산해 10년 이상 거주한 경우 소득이나 자격조건에 관계없이 분기당 25만원 1년간 최대 100만원을 지급한다. 서초구가 내년부터 시행하는 청년기본소득 사회정책 실험은 1년 이상 구 거주자로 만 24~29세 청년 3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매월 최저 생계 급여 수준인 52만원을 제공한다.

서울시와 경기도 성남시가 지난 2016년부터 청년수당과 청년배당을 각각 시행해오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가 지난해 청년기본소득을 도입했고,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유일하게 야당에 속한 서초구까지 가세하면서 청년층을 타깃으로 하는 여야간 정책경쟁이 불붙고 있는 양상이다.

서울시와 경기도, 서초구는 세부 조건이 다르지만 지급 대상은 모두 청년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소속 정당과 관계 없이 청년층이 정책의 주요 타깃이 된 이유는 경제적 취약계층 중 유일하게 복지정책에서 소외된 계층이기 때문이다. 아동은 영유아 보육료와 한부모가족 양육비 지원, 장애아동수당을, 고령층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을 국가가 보장한다. 또 청년기본소득이 전국민 기본소득으로 확장하는 데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지자체들이 달아오르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문제는 기본소득 논의가 청년기본소득에 함몰돼 다양한 정책 접근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복지 사각지대는 특정 연령이 집중적으로 노출될 가능성도 크지만, 소득 수준과 직업군에 따라 중층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청년은 복지 사각지대의 일부일 뿐 대표성을 가질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한 만큼 도입 대상과 재원 확보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청년기본소득이 자칫 정쟁의 도구로 전락해 기본소득 논의 자체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여당표 대 야당표 청년기본소득 간 공방이 모든 기본소득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세 지자체 중 유일하게 정책 검증을 자처한 서초구의 경우 청년기본소득 실험의 마무리 시점이 공교롭게도 대선 시기와 맞물려 있어 정치권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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