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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기본소득]②한정된 나랏돈, 복지 사각지대 어쩌나

양지윤 기자I 2020.10.22 05:08:00

'○○모녀 사건' 반짝 관심 '코로나 장기화' 앞당긴 기본소득 논의
한국 vs 핀란드 복지지출 20% 차이
기본소득 도입 앞서 촘촘한 사회보장제도가 우선
5년 뒤 초고령사회, 복지비 지출도 빠듯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서울 성북구 다세대주택에서 생활고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던 `성북구 네 모녀`가 11월2일로 사망 1주기를 맞는다. 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사한 비극이 되풀이 되면서 선별복지 체계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들은 전형적 취약계층이 아니었을 뿐더러 급작스러운 위기가 닥쳐도 발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른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작된 지난 8월30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상점에 임시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코로나 장기화, 기본소득 논의 촉매로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기본소득 논의는 촘촘하지 못한 현 사회보장제도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산업구조와 노동시장 급변에 따라 비정규직, 단기근로, 플랫폼 노동 등 고용 형태가 다변화하고 있지만 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현행 복지체제는 이를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을 맞기 전까지 복지정책의 그늘은 주로 정책 지원에서 소외된 가족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이 환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복지 사각지대가 일상의 문제로 떠올랐고 급기야 기본소득 도입 논의를 앞당기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정치권에서는 연일 기본소득을 제도화하기 위한 백가쟁명식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지만 정치권 밖에서는 온도 차가 존재한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빈틈을 완전히 메우지 못하고 상황에서 선별복지 강화를 건너뛰고 기본소득을 제도화하자는 것 자체가 설익은 제안이라는 지적이다. 기본소득 실험에 나선 북유럽 국가와 한국은 복지지출에서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도 시기상조론의 주된 근거다.

◇복지지출 비율 낮고 재원 확보도 어려워

실제 기본소득을 지급한 핀란드와 네덜란드, 캐나다의 공공사회 복지지출 비율은 한국보다 작게는 6%포인트 많게는 20%포인트를 웃돈다. 핀란드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 복지지출 비중이 △2009년 28.3% △2012년 29.4% △2013년 30.6% △2014년 31%로 꾸준한 증가세다. 네덜란드 역시 △2000년 19.8% △2009년 23.1% △2012년 24.1% △2014년 24.7%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캐나다는 △2000년 15.8% △2009년 18.5% △2012년 17.4% △2014년 17%다.

반면 우리나라의 2018년 GDP 대비 공공사회 복지지출 비율은 1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0.1%의 절반 수준으로 GDP 대비 공공사회 복지지출 비율이 파악된 29개국 중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의 공공사회 복지지출은 2000년 4.8%에서 2009년 9.4%로 두배 가까이 급증했으나 2013년에 이르러서야 10.2%로 두 자릿수대로 올라섰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회예산처가 지난 2014년 발표한 ‘우리나라 사회복지지출 수준의 국제비교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2011년 기준 사회복지지출 국제비교 지수가 OECD 30개국 중 가장 낮았고 국민부담률도 28위에 그쳤다. 국민부담률은 GDP에서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나는 지표다. 한국은 24.3%로 OECD 평균(33.7%)보다 9.4%포인트 낮다. 국민 모두에게, 아무 조건없이, 각각의 개인에게 매달 꾸준히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도입되기에 앞서 공공 사회복지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거듭 나오는 이유다.

탄소세·토지세 부과?…초고령사회 대비가 우선

기본소득에 쓰일 재원 확보도 풀어야 할 과제다. 기본소득 찬성론에서는 탄소세나 토지보유세, 디지털세 등을 부과해 기본소득으로 환급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기본소득을 위한 목적세로 부과하면 조세저항이 적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기와 기후변화 위기 등의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스위스는 지난 2008년부터 난방용 화석연료에 탄소부담금을 부과하고 여기서 거둬들인 돈은 생태배당으로 모든 국민에게 균등 배분한다. 미국 앨라스카주도 1982년부터 석유 판매로 발생한 이익을 6개월 이상 거주한 거주한 사람에게 1년에 한번 지급한다. 하지만 스위스는 인구가 약 850만에 불과하고 앨라스카주 역시 인구는 적고 자원은 풍부하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그대로 도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크다. 또 새로운 목적세 도입를 도입하면 물가 상승이나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은 5년 뒤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어 향후 고령층에 대한 연금 지출 규모가 빠르게 불어날 전망이다. 통계청이 지난 15일 발표한 ‘2019년 장래인구특별추계를 반영한 내·외국인 인구전망 2017~2040’에 따르면 내국인 고령인구는 2020년 803만명(16.1%)→2040년 1666만명(34.3%)로 예상된다. 이 중 85세 이상 초고령인구는 77만명(1.5%)→226만명(4.6%)으로 3배 이상 증가한다.

덜 받고, 덜 쓰는 그간의 복지운영 체계를 손보지 않고서는 고령층에 대한 연금지출 증가로 인해 재정여력은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위한 목적세 신설이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행 복지 재원을 활용할 경우 정부의 재정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나아가 복지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기본소득 도입 논의에 앞서 현행 세금·복지 구조 개선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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