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요지경 ‘부동산 대책’

허영섭 기자I 2020.07.10 05:00:00
정부가 후속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 한다. 스물한 번째인 ‘6·17 대책’이 아직 잉크도 마르기 전에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껏 발표된 정책마다 응급처방으로 땜질에 누더기를 덧댄 것뿐이다. 집값을 잡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낸 데서도 확인되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집 한칸 마련하겠다는 일반 서민들의 소박한 기대만 허물어뜨리고 말았다. 정권 지지층까지 등을 돌렸다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세금이 겁나면 집 한 채만 남겨놓고 처분하는 게 좋겠다며 은근히 눈총을 주며 채근해도 도무지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설령 세금을 두드려 맞더라도 집값이 더 오른다면 구태여 팔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미 수도권 전역은 물론 지방 중소도시까지 모두 집값이 오른 상태다. 애초 표적이 됐던 서울 강남지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풍선처럼 퍼져가는 부동산 정책의 역설이다.

고위 공직자들도 부동산 정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솔선해야 하는데도 멀뚱멀뚱 구경만 하는 분위기다. 여분의 주택을 처분했다는 경우에도 꼼수가 난무한다. 강남의 ‘똘똘한 한 채’를 지키려다 민심의 직격탄을 맞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아들에게 증여하고 관리비를 부담한다는 박병석 국회의장이나 마찬가지다. 장·차관과 국회의원 중에서도 다주택자가 수두룩하다. 온갖 대책이 발표된다 한들 시장을 설득시킬 수 없었던 이유다.

다주택 부동산을 처분하도록 하는 정책에 찬성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각자 집안에 특별한 사정이 있을 테고, 그에 따라 지방에도 거주할 집이 필요한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다. 별도로 부모님을 모시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다주택자라고 해도 모두 약삭빠르게 투기 이익을 노려 아파트를 사들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더욱이 공직자 신분이라고 해서 현재 사는 집 외에는 모두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법적으로 온당한지도 의문이다.

일반인들에 있어서도 엄연한 사유재산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에 의해 과도하게 재산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 야기되는 상황이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근거가 되는 공시가격이 객관·형평성을 잃었다는 데서부터 문제가 제기된다. 요즘 발부되고 있는 아파트 재산세의 경우 서울지역은 20~30% 오른 게 보통이라고 한다. 달랑 집 한 채 갖고 있는 경우에도 앉은 채로 ‘세금 폭탄’을 맞은 꼴이다. 명색이 자기 집에 살면서도 정부에 기간별로 월세를 내는 양상이라고 해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비싼 집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거기에도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범위가 존재하는 법이다.

지금 여건에서는 집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팔려고 내놓아도 대출규제로 인해 사겠다는 임자가 나서지를 않는 것이다. 과거 서민들이 내집을 마련하거나 집칸을 넓혀 옮기려면 알뜰살뜰 부은 적금에 대출이나 전세 끼는 방법을 이용했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이 모두 막혀버렸다. 과거의 일반적인 부동산거래 관행까지 적폐로 몰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결국 집을 보유한 사람은 팔지 못한 채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하고, 실수요자의 입장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해 집을 사지 못하는 미묘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당국으로서는 누구에게든 세금만 물리면 된다는 태도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부동산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며 동떨어진 논리를 고집하고 있다.

국민들은 한숨을 지으면서도 다음 대통령선거를 내다보는 중이다. 시중의 불만이 팽배한 만큼 여야 후보들이 부동산 실태에 대해 모른 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투기 단속은 마땅하되 왕복 달리기하듯 신뢰를 깎아 먹는 대책의 되풀이만큼은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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