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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검수완박이 합헌이라니

박정수 기자I 2023.04.19 06:30:00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 우리 사회에서 법률가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직업은 드물다. 현재 대통령도 법률가이고, 야당 대표도 법률가다. 법률가가 높은 지위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법을 잘 지키고, 모범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법률가들을 그렇게 평가할지 의문이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의 ‘2023 번영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사법신뢰지수는 167개국 중 155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의 정치 및 사법제도가 매우 후진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그 원인을 법률가 등이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3일 국민의 힘이 검수완박법을 가결·선포한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와 법제사법위원장의 가결선포 행위에 대한 무효확인 청구를 모두 5대4로 기각했다. 재판관 다수는 “청구인들은 모두 본회의에 출석해 법률안 심의·표결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았고, 실제 출석해 개정법률안 및 수정안에 대한 법률안 심의·표결에 참여했다”면서 “국회의장의 가결선포 행위가 청구인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다만 유상범·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청구는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인용했다. 결국 법제사법위원회의 안건조정위원회가 미리 가결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 심사 없이 법률안이 의결된 것은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함으로써 절차적으로 위법이지만, 법안까지는 무효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이번 결정과정을 보면 특정 정당에서 추천된 헌법재판관들이 거의 대부분 비슷한 결정을 했다. 헌법재판관은 헌법에 의해 임명되는 장관급의 국가기관으로서 오로지 국가공동체와 국민만을 보고 합당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자신들을 임명해준 정당의 입장에 맞게 헌법재판을 하는 것은 그들이 청문회에서 추천자와 단절돼 양심에 따라 결정을 하겠다는 약속을 위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판관들의 편향성은 재판관들에게 요구되는 객관의무와 공정의무에 반한다. 국회에서 여야가 나뉘는 것처럼, 재판관들까지 진영이나 이념으로 나뉘어 판결한다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설립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검수완박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유효하다는 판단을 받음으로써 그동안 장애인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익활동을 많이 한 김모 변호사의 말처럼 이제는 범죄자의 천국이 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재심전문으로 유명한 박모 변호사도 결국 부자나 권력자들은 죄를 피해갈 수 있지만, 힘이 없는 사람들은 더욱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워 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욱이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폐지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게 됐다. 지금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많은 변호사들은 검수완박법 시행 후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구제와 구체적 정의실현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너무 잘 알고 있어 불만이 많다.

법률가들이 세상을 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검수완박법이라는 괴물 같은 법에 합헌결정을 내림으로써 우리 형사사법은 오히려 후퇴하게 됐다. 사법시스템의 신뢰도가 세계적으로 최하위인 나라에서 법률가들이 더 나쁜 선택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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