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사법개혁 허와실①]17년간 '제자리 걸음'…국회 입법 쏟아냈지만 실효성 '글쎄'

남궁민관 기자I 2021.07.23 06:10:00

공군 여중사 사건, 軍 수사기관 물론 법원까지 도마
군사법원 폐지 등 비현실적 입법안만 봇물
논란의 관할관 역시 "평시 사문화"…졸속입법 우려도
법조계 "전시 도외시 위험…사법독립 확보할 대안 충분해"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최근 군대 내 성추행 피해를 입은 공군 부사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군 사법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말 공군 부사관 사건이 불거진 이후 22일 현재까지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국회에 쏟아진 군 사법 개혁 관련 입법안만 6건에 달한다. 이중에는 평시 군사법원을 아예 폐지하자는 급진적 내용까지 담겨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론에 떠밀린 ‘졸속 입법’은 전시 등 만약의 사태를 도외시한 위험한 발상”이라며 “분단 국가의 현실과 현재 군 사법 제도의 현 주소를 정확히 진단하면서도, 군 내 인권 침해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 방안들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지난 9일 오전 국방부에서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軍 사법개혁 17년 ‘도돌이표’…“비현실적 개선안탓”

22일 국회에 따르면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은 지난 16일 ‘군사법원의 재판권을 전시 등 국가비상사태 발생시에만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앞서 이달 들어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2인은 ‘군사법원의 재판권을 군사범죄로 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소 의원과 유사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각각 내놓은 상태다. 이들 3건의 개정안을 비롯 6~7월 사이 접수된 군사법원 개정안만 6건에 이른다. 이들 개정안은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등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군 사법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된 군 사법 개혁 움직임은 10여년 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2014년 군 내 가혹행위로 육군 28사단 소속 군 장병이 사망하는 이른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군사법원법이 개정되기에 이르렀다. 다만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올해 공군 부사관 사건이 불거지자 또 다시 군 사법 제도가 도마에 오르며 ‘도돌이표’를 찍는 모양새가 됐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법조계에서는 무려 17년 여 간 이뤄진 개혁 논의에도 여전히 군 사법 제도에 불신의 목소리가 나오는 핵심 배경에는, 결국 그간 논의됐던 개혁 방안들이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당장 현재 쏟아지고 있는 입법안들 역시 17년 전 논의됐다가 무산됐던 내용들을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국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의되는 △평시 군사법원 폐지나 재판권의 군사범죄 국한 △관할관 및 심판관 제도 도입 등의 입법안은 여론에 떠밀린 대표적인 ‘졸속 입법’이라고 지적한다.

고검장 출신 김경수 변호사는 “군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군 사법 제도를 흔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쟁이 완전히 없을 것이란 전제에서 가능한 것”이라며 “군사법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얼마나 확보하느냐, 관할관이 절제된 권한을 행사토록 하느냐 등 절충안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현직 군판사는 “관할관 및 심판관 제도는 이미 2014년 군사법원법 개정 이후 평시 거의 사문화된 수준”이라며 “개혁을 하려면 문제 진단부터 명확해야 하는데, 당장 사문화된 제도들을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개혁 논의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반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사법원이 설치된 부대의 장이 맡는 관할관은 피고인을 감경해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어 논란이 됐는데, 이미 개정 군사법원법은 관할관 ‘감경 대상 범죄를 작전 등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로 한정하고 있다. 심판관 제도의 경우 군사법원 재판관 중 일부를 법조인 자격 없는 일반장교가 맡는 것을 말하는데, 이 역시 개정 군사법원법에서 ‘원칙적 폐지’를 이미 못박은 상태다.

“軍 사법 견제장치·독립성 확보 고민할만” 대안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현재 군 사법 제도와 관련, “마치 옛날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현실인양 착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은 뒤, 현재 군 사법 제도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도 표출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방면으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등군사법원의 민간 이양, 군 검찰 및 군 사법경찰의 지휘·감독권 조정, 군 법무관 계급 제도폐지 등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노 변호사는 “1심은 보통군사법원이, 항소심은 고등군사법원이 아닌 민간에 맡기게 되면 행여 발생할 관할관의 권한 남용이나 군사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등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민간에서도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 지휘라인을 달리한 것처럼, 명령지휘계통이 한 지휘관 휘하에 있는 군검사와 군사법경찰도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군판사 출신 강석민 법무법인 백상 변호사는 “임관 시부터 군판사 요원과 군검사 요원을 분리하기는 어렵더라도 일정기간 근무 후에는 일정한 선발절차를 거쳐 군판사로만 보직될 군법무관과 군검사로 보직될 인원을 분리해 현행 순환보직을 금지해야 한다”며 “그래야 군판사나 군검사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으며 군사법제도 운영의 신뢰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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