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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노동이사제 민간 확산되나…“상생 경영” Vs “경영권 침해”

최훈길 기자I 2020.05.18 05:00:00

21일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합의 시도
“통 큰 노동이사” Vs “강성노조 부작용”
금융기관 도입되면 투자자 반발 가능성
과속하면 21대 국회도 ‘동물국회’ 우려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작년 11월22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한국노총,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공공기관위원회 출범식을 개최했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앞줄 왼쪽 네 번째)은 “큰 결실을 이뤄서 공공기관위원회가 경사노위의 모범 위원회로 가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제공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정부가 국정과제인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재추진하기로 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여당은 노동자 대표가 공공기관 이사회에 참여하게 되면 공공기관 투명성 강화, 노사 상생 경영, 거수기 이사회 개혁 등 긍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시작으로 민간까지 이를 확대하는 게 목표라는 점이다. 경영계에서는 가뜩이나 노동계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민간에까지 노동이사제가 확대될 경우 노조에 의해 경영권이 휘둘리는 부작용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노·정 공감대 급물살 탈 듯

1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오는 21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소속 공공기관위원회 회의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논의하고,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노동이사 자격·대상·선출 방식, 공운법 개정 여부 등 노동이사제 관련 세부 방법론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노조는 수차례 물밑 논의로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다. 정부와 노조는 작년 11월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회 출범 이후 수차례 비공개 회의를 했다. 기재부·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 한국노총은 노동이사제 관련 입장을 조율해 왔다. 기재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방안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

김정욱 KDI 선임연구위원은 해당 연구용역에서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근로자 대표들이 이사회 비상임이사로 임명돼 심의·의결권 행사 △공공기관별 근로자 대표 수는 이사회의 3분의 1 수준인 2~3명 △근로자 대표 임기는 2년 △공운법 개정 등을 제안했다. 21일 회의는 관련 세부안을 놓고 합의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다만 정부·노조·여당이 노동이사제 도입 총론에 공감하고 있지만 각론에서 일부 이견을 보이고 있어 격론이 예상된다.

조양석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은 “기재부가 공공기관 경영에 대한 권한을 과도하게 갖고 있다”며 “공운법 개정 과정에서 균형과 견제 원리에 따라 기재부에 쏠린 권한을 줄이는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소불위 강성노조’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김정욱 KDI 선임연구위원은 “보수, 복리후생, 사업구조조정 등 노조에 민감한 문제가 논의될 때 노동이사와 다른 이사들 간에 갈등만 심해질 수 있다”며 “한전(015760), 가스공사(036460) 등 상장된 공공기관에 도입할지도 여부도 고민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 입장 충분히 조율해야”

정부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징검다리 삼아 민간기업까지 이를 확산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경영계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에 민감해 하는 이유다. 최근 기업은행에서 벌어진 노동이사제 도입 논란이 대표적이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낙하산 반대투쟁에 나선 노조 달래기의 일환으로 노동이사제(노조추천이사제) 수용을 약속했다가 야당으로부터 맹공을 받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보수정당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앞서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2016년 7월 사외이사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사주조합에서 추천하는 1인을 의무적으로 선출하는 내용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 정무위 정재호 민주당 의원은 사외이사를 우리사주조합이나 소수주주가 추천한 인사 중에 선임하도록 하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김 전 대표의 상법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조대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대해 “민간 금융회사에서 금융회사 근로자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강화되면 투자자, 금융소비자 보호가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효과부터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공공기관 거버넌스 개편 문제는 민간 기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 면밀하게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며 “정책의 좋은 의도만 생각할 게 아니라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제=해당 기관에 근무하는 근로자 대표나 노조 추천인이 이사회 임원으로 참여해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 발언·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근로자이사제, 근로자대표이사제, 종업원이사제로도 불린다. 1951년 독일을 시작으로 프랑스·핀란드 등 유럽 주요국가 공공·민간 기업에 도입됐다. 우리나라는 서울시의회가 2016년 9월 서울시 근로자이사제 운영 조례를 처리하면서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 전국 최초로 도입됐다. 문재인정부는 2017년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20대 국회에서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논의됐지만 야당 반발로 통과되지 못했다.[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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