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경의 亞!금융]'주식 너무 많이 샀나'…고민에 빠진 일본은행

김인경 기자I 2020.12.06 09:16:54

전세계 유례없이 ETF 직접매입…주식 보유액만 430조원
5% 이상 지분 가진 기업만 토픽스 1800곳 중 389곳
주식시장 왜곡·'의결권 無행사'에 주주친화정책 어렵다 평가
日증시 1991년 수준으로 회복하자 '출구전략' 논의 시작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고민에 빠졌다. 10년간 증시를 부양하겠다고 야금야금 상장지수펀드(ETF)를 샀더니 이제 어지간한 기업의 주요주주가 됐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다는 평가다.

일본은행은 2010년 12월부터 닛케이225지수에 연동하는 ETF를 매입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직접 주식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규모도 작지 않다. 2010년만 해도 연간 매입규모는 4500억엔(4조7000억원) 수준이었지만 2013년 1조엔(10조4500억원), 2014년 3조엔(31조3000억원), 2016년 6조엔(62조6500억원)으로 매입 규모를 점차 늘렸다. 특히 올 3월에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연간 매입규모를 6조엔에서 12조엔(125조3000억원)으로 확대된 상황이다.

ETF를 1조엔 어치 살 때 마다 닛케이지수는 약 260포인트가 오른다. 도시마 이쓰오 도시마&어소시에이션 대표는 “일본은행이 끌어올린 닛케이지수만 적게 잡아도 4000포인트”라고 말한다.

지난 3분기 말 기준 일본은행의 ETF 보유액은 40조4733억엔(430조원)이다. 대형주 위주의 닛케이225지수를 차치하더라도, 도쿄증시 1부(토픽스) 시가총액 중 6.5%가 일본은행의 몫이다. 지금의 속도라면 2023년께에는 8~10%까지 늘어난다.


10년간 ETF 매입이 이어지니 일본은행은 도쿄증시 1부에 속한 상장사 2178곳 가운데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종목’만 389개사에 달한다. 10% 이상 보유한 회사도 70곳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주식을 매입하는 게 정상적인 구조는 아니다. 먼저 관제 금융이란 비판을 피할 순 없다. 최근 코로나19붐으로 전세계 증시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증시는 지난 한 달에만 15% 상승했다. 일본판 버블 붕괴인 ‘잃어버린 30년’ 직전 수준까지 치솟으며 1991년 3월 최고치까지 바짝 다가갔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은 의문을 품는다. 일본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반영된 게 아니라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중앙은행의 직접개입으로 만들어낸 주가란 이유에서다.

일본은행은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모두 운용사에 위탁하고 있다. 운용사도 별다른 의결권을 행사하진 않는다. 중앙은행이 개별 기업의 운영에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는 원칙 탓이다. 하지만 1800곳 상장사 중 389곳의 주요주주(지분 5% 이상)인 일본은행이 주주총회에서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게 자본시장 구조에서 장점만은 아니다. 주주가 요구를 개진하고 기업이 그에 걸맞은 선택을 하는 ‘주주 친화적 지배구조’에서는 어긋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가가 떨어질 경우, 중앙은행이 손실을 보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일본은행의 ETF 손익분기점은 닛케이225지수 기준 2만493포인트 수준이다. 현재 주가가 폭등하면서 10조엔 가량의 평가이익을 남겼지만, 주가가 무너질 경우엔 국민 혈세가 들어간다.

하지만 일본은행이 ETF 비중을 한번에 중단할 수도 없다. 일본은행이 매입을 중단하면 대규모 완화 정책을 중단했다고 판단하는 투자자들이 발생하며 증시가 요동칠 수도 있다. 기존에 사뒀던 ETF를 국민에게 양도하는 방식의 출구 전략이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의무 보유기간을 조건으로 국민들에게 싼값으로 ETF를 양도하면 시장 저변도 넓어질 뿐더러 ‘예금 위주’인 국민의 자산 포트폴리오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아이디어의 내용이다. 실제 홍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매입한 주식을 개인에게 양도해 개인투자자를 확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먼저 1년 12조엔에 이르는 보유액의 증가 속도를 떨어뜨리면서 출구전략을 논의하는 게 좋을 것”이라면서 “일본은행에 의존하지 않아도 주가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AFP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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