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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②] ‘딸랑딸랑’ 달구지에 할배 태운 늙은소의 워낭소리

강경록 기자I 2021.02.11 06:00:00

경북 봉화 워낭소리공원
자료=한국관광공사

경북 봉화 워낭소리공원의 조형물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노인은 오늘도 늙은 소가 끄는 달구지에 몸을 싣고 논으로 향한다. 위태로운 소의 걸음에 맞춰 ‘딸랑딸랑’ 워낭이 울린다. 노인이 꾸벅꾸벅 조는 동안에도 소는 제 갈 길을 묵묵히 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한 그 길을 따라. 2009년 개봉한 ‘워낭 소리’는 여든 살 농부와 마흔 살 소의 우정을 그린 독립 영화다. 30년 동안 촌부의 곁을 말없이 지킨 늙은 소 이야기는 개봉과 동시에 큰 화제가 됐다. 각종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독립 영화로는 기록적인 293만여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같은 해 개봉한 ‘아바타’가 ‘워낭 소리’의 2000배가 넘는 제작비로 1300만여 명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그 성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워낭소리공원의 모습


조용한 시골 마을에 울려퍼진 워낭소리

영화의 흥행은 자연스럽게 촬영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이 하루에 적게는 100~200명, 많게는 500명 이상이 다녀가는 봉화의 명소가 됐다. 주인공 고(故) 최원균 할아버지 집 앞에 워낭소리공원이 조성된 것은 그즈음이다. 그리고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다.

공원은 아담하다. 소가 끄는 달구지에 앉은 할아버지 동상과 영화 주요 장면을 동판에 새겨 간략한 설명과 함께 소개한 전시물이 이곳에 있는 전부다. 그러니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하고 워낭소리공원에 가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에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그 무엇 때문이다. 10여 년 전 영화관을 나설 때 받은 감동이 지금도 여전하다면, 그 따뜻한 무엇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테니까.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가장 먼저 늙은 소와 할아버지 동상이 여행자를 맞는다. 달구지에 할아버지를 태우고 어딘가로 가는 늙은 소. 어디더라… 논일하러 갈 때도, 마을 공동 작업하러 갈 때도 할아버지는 달구지를 타고 다녔다. 늙은 소가 끄는 달구지는 그렇게 30년 동안 할아버지 다리 노릇을 했다. 할아버지가 자식들 권유에 못 이겨 우시장에 늙은 소를 팔러 갈 때도, 소는 달구지를 묵묵히 끌었다.

고 최원균 할아버지 동상


30년 지기였던 소와 노부부가 같이 묻힌 곳

동상으로 남은 늙은 소가 젊어 보여 다행이다. 일반 소보다 곱절 넘게 산 늙은 소는 영화에서 늘 위태로워 보여 무척 안타까웠다. 달구지에 앉은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할아버지는 꾸벅꾸벅 조는 대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늙은 소 자랑을 할 때면 어김없이 보이던 그 환한 미소를.

할아버지는 우시장에서 늙은 소를 못 팔고, 아니 안 팔고 친구들에게 소 자랑을 하는 장면에서 가장 밝게 웃는다. 500만원 밑으로는 안 판다는 할아버지에게 소 장사는 “잡아 봐야 고기 값 60만원도 안 나온다”고 했고, 그런 상인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할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잠든 자신을 봉화장에서 집까지 데려온 늙은 소에 대한 자랑을 한참 이어간다.

세상에 둘도 없는 늙은 친구를 위해 할아버지는 지게를 진다. 지게에는 늘 소 먹일 풀이 가득하다. 기다시피 산에 올라 꼴을 베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절름거리는 늙은 소의 걸음만큼 위태롭다. 달구지가 할아버지에 대한 늙은 소의 조건 없는 사랑이라면, 지게는 그에 대한 할아버지의 화답이다. 서로의 자리로 비워둔 지게와 달구지에 땔감을 가득 실어 나른 2006년 겨울, 이별이 찾아왔다. 30년 지기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할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이 한숨처럼 내뱉는 “에이, 씨”라는 탄식에 모두 담겨 있다. 꾸밈없는 날것의 탄식이 세상 어떤 이별사보다 애절하다.

소 무덤은 워낭소리공원에서 6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양지바른 소 무덤 뒤에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삼순 할머니 무덤도 나란히 자리한다. 할아버지가 2013년에, 할머니는 2019년에 별세했다. ‘워낭 소리’의 주요 촬영지인 노부부 집은 2019년 화재 이후 일반인의 관람을 제한하고 있다.

청량사 오층석탑


워낭소리 울려퍼지는 봉화의 볼거리들

‘워낭 소리’ 첫 장면에 등장하는 절집이 청량사다. 청량산도립공원에 자리한 청량사는 663년(신라 문무왕 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풍수지리상 길지 가운데 길지로 알려진 청량사는 연꽃을 닮은 청량산 열두 봉우리의 중심인 꽃술 자리에 들어앉았다. 봉화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보물 1666호)과 종이로 만들고 금박을 입힌 지불(紙佛)이 유명하다. 지불을 모신 유리보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핀란드에 로바니에미 산타 마을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분천산타마을이 있다.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가 출발하는 분천역에 조성한 이 마을은 1년 365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눈 쌓인 분천산타마을은 말 그대로 동화 속 세상이다. 포토 존에서 기념사진 촬영은 필수.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쁜 엽서를 보내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분천역에서 방문객을 위해 손글씨 엽서를 무료로 나눠준다. 작성한 엽서는 분천역산타우체국에서 부치면 원하는 날짜에 받아볼 수 있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봉화닭실마을은 조선 중기 충재 권벌 선생 일가가 이룬 집성촌이다. 닭이 알을 품은 금계포란형 명당으로, 권벌 종가 전적(보물 896호)을 소장한 충재박물관, 청암정과 석천계곡(명승 60호) 등이 마을에 있다. 청암정은 드라마 ‘동이’, ‘바람의 화원’, ‘정도전’과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촬영지로 유명하다. 닭실마을과 석천정사를 잇는 숲길도 매력적이다.

분천산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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