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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파괴의 시대…트위터도 실패자다

오현주 기자I 2014.06.12 07:07:00

'시장주도자'들 전략보고서
자산은 부채되기 전 정리해야
머뭇거리던 코닥 '역사속으로'
한때 '혁신' 차량내비·MP3
변화 못읽어 스마트폰에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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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들은 한순간에 시장을 장악하는가
래리 다운즈·폴 누네스|360쪽|RHK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내비게이션은 신세계였다. 자동차에 떡하니 달아놓자 지구가 내 차를 중심으로 도는 듯한 착각까지 생길 정도였다. 어서 빨리 지구를 내 차 안으로 옮겨 놓으려는 운전자들이 제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행진이 멈췄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품이 하늘서 뚝 떨어지면서. 스마트폰. 이 조그만 물건 하나에 차량용 내비게이션 업계는 초토화됐다. 애당초 스마트폰을 경쟁업체로 취급도 안 했으니 방심, 자만 어쩌구 할 상황도 못 됐다. 더 갑작스럽고 더 파괴적이서 더 충격적인 몰락.

졸지에 스마트폰에 모든 걸 다 뺏긴 건 내비게이션뿐만이 아니었다. MP3 플레이어도 있다. 이들 역시 스마트폰 따윈 ‘아무리 똑똑해도 전화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터. 하지만 그 전화기에 회사와 제품, 신기술의 영예까지 다 내줘야 했다.

순탄하던 시장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비즈니스전략·정보기술 분야의 유명 컨설턴트인 저자들이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다. ‘빅뱅 파괴의 시대’다. 안정적인 산업기반을 한순간에 초토화시키는. 그리고 스마트폰 같은 새로운 종류의 혁신은 ‘빅뱅 파괴자’라고 명명했다.

저자들의 의도는 두 가지다. 잠재적 빅뱅 파괴자를 조기에 파악하자는 것이 하나. 그들을 이용하든 대안을 찾든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거다. 다른 하나는 빅뱅 파괴자가 한 번 돼 보자는 것. 빅뱅 파괴 전략으로 급격하게 시장을 장악한 혹은 실패한 제품과 기업에 주목한 근거다. 이 같은 경고 혹은 제안에는 저자들의 그간 경력이 작용했다. 래리 다운즈는 ‘킬러 앱’이란 개념을 소개한 이다. 등장하자마자 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 제품·서비스를 가리키는 용어. 이를 들고 15년 전에 이미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란 저서까지 내놨다. 기업의 혁신프로세스를 개선해 특허까지 받은 폴 누네스는 파괴적인 기술의 짧아지는 시간 간격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책은 두 사람이 ‘빅뱅 파괴’로 거둔 시너지인 셈이다.

▲네 번째 혁신 ‘빅뱅 파괴의 시대’

‘새롭다’의 가장 강력한 의미인 혁신은 인류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저자들은 ‘빅뱅 파괴자의 시대’를 그 네 번째 혁신이라고 단언한다. 다만 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저가에서 고가로 이동하는 ‘아래서 위’도 아니고, 그 이전 단계인 ‘위에서 아래’도 아니다. 아래·위·옆 할 것 없이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빅뱅 파괴자란 거다. 그들은 보다 좋고, 보다 싸고, 고객에 보다 딱 맞춘 제품을 들고 한순간에 시장을 꿰찬다. ‘맞춤’이야 새로울 건 없지만 일부가 아닌 거의 모든 사용자가 대상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단순히 파괴적 혁신이 아니란 뜻이다. “그야말로 초토화 혁신이다.”

파괴력과 속도도 엄청나다. 게임 앵그리버드는 사흘 만에 1000만건이 다운로드 됐다. 아마존의 e북 단말기 킨들은 최초 버전 매진에 채 5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위압이 닥쳤을 때 허둥거리며 수습에 나선다는 시도 자체가 우습다는 게 저자들의 판단이다. 게다가 파괴자가 다가오는 순간을 소비자가 먼저 알아챈다면 기업은 그걸로 끝, 기회조차 없다.

▲좋은 품질, 싼 가격 동시 추구하면 ‘망한다’

빅뱅 파괴자들에겐 ‘혁신가→초기 사용자→초기 다수 사용자→후기 다수 사용자→지각 사용자’란 고전적인 고객 유형이 도대체 먹히질 않는다. 오로지 두 가지뿐. 제품 개발 자체에 참가하는 초기 사용자와 그 외의 사람들 전부다.

그렇다면 이 와중에 어떤 대비 전략이 필요하겠는가. 저자들은 시장진입 시점의 정확한 포착을 중요하게 따졌다. 이를 잘 간파한 것이 아마존. 지난 10년간 아마존은 경쟁업체 이베이의 추월을 완벽한 타이밍으로 따돌렸다. 성공의 덫에 철저히 준비하라는 조언도 붙였다. 여기서 실패한 기업으론 트위터를 들었다. 실험적인 시도라 할 만큼 사업이랄 게 없던 트위터가 너무 갑작스런 인기에 휘말리며 기술에서, 리더십에서 다채로운 문제를 노출했다는 거다. 이른바 ‘재앙을 동반한 성공’이다. 자산은 부채가 되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 머뭇거린 코닥은 결국 파산으로 명예와 역사까지 접었다.

하지만 저자들이 ‘핵’으로 꼽은 건 이거다. ‘보다 좋은 품질과 보다 싼 가격을 동시에 추구하면 망하는 지름길’이란 것. 가령 여기 MBA 과정에 충실한 모범생이 있다. 이런 걸 공부했을 거다. ‘신제품과 서비스는 품질이 더 좋거나 가격이 낮을 것. 특히 세분화된 시장보다 특화되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것.’ 과연 이론대로일까. 저자들의 답은 ‘절대 아니올시다’다. 왜냐고? 요즘 제품 중 질·가격·특화를 내세우지 않는 게 어디에 있느냐는 거다. 게다가 빅뱅 파괴자들은 ‘버전’을 더 붙이지 않는가. 신상품이 등장할 때마다 특성, 기능 아니면 신뢰를 덧붙이니, 그때마다 제품의 가격은 떨어지고 결국 무료가 될 게 뻔하다는 논리다.

▲초토화 혁신 시대에도 희망은 있나

한때 경영계는 ‘혁신기업의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다. 존속할 것인가 파괴할 것인가. 책은 그 이상의 고민을 요구한다. 이 틀 안에선 ‘파괴적 혁신’조차 구태의연하다.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초토화에 혁신의 성격구분이 웬 말이냐는 얘기다.

알다시피 빅뱅은 천체물리학 용어다. 태초에 빅뱅이란 대폭발로 일시에 드넓은 우주가 탄생했고, 그 우주가 천천히 확장되다가 궁극에 가선 소멸된다는. 저자들이 굳이 이 개념을 끌어온 이유는 뭔가. 숱한 상품의 빅뱅들은 결국 수명을 다해 스러져갈 것이고, 살아 남으려면 전혀 다른 그림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지형은 대폭발로 완전히 뒤집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옛 시절의 감상에 젖어 있겠느냐는, 묵직하고 집요한 질책이기도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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