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이미 '칩4 동맹' 영향권…정부, 美에 요구할 건 요구해야"

최영지 기자I 2022.08.05 06:00:00

<美·中 패권전쟁, 기로에 선 韓>
韓 기업의 中 공장 추가 증설
美에 '통제 않겠다' 확약 받아야
中, 韓 반도체 수입해야 하는 상황
무역 보복 가능성은 크지 않아

[이데일리 최영지 이다원 기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미국·중국 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반도체 4국(Chip4) 동맹’ 가입에 대한 의사를 밝혀야 하는 시기가 임박했다. 일본·대만과 함께 중국 견제 시스템인 칩4 동맹에 가입할 경우 중국 내 반도체 수출 감소 및 무역 보복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어 우리 정부와 반도체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차세대 반도체 공급망에 참여해야 하는 탓에 칩4 동맹 가입에 응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대중 수출 비중이 워낙 큰 만큼 우리 기업 및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실리를 찾기 위해 미국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칩4 동맹, 우리가 가야 할 길…이미 영향력 크다”

칩4 동맹은 미국이 반도체 설계, 일본이 장비·소재, 우리나라와 대만이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생산능력에 각각 주력하는 반도체 공급망을 구성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중국을 배제하는 기술 동맹으로 보는 게 옳다. 정부는 지난달 말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 칩4 가입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칩4 동맹은 우리나라에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떠밀려서 하듯 가입하는 것보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빨리 결정하는 것이 좋다”며 “반도체 핵심기술을 미국이 갖고 있는 만큼 대척점에 서서 반도체 생산은 물론 반도체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칩4 동맹 가입 시 중국의 보복 가능성에 대해서도 “무역 보복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우리 반도체산업의 대중국 의존도가 큰 건 맞지만 중국 입장에서 칩4동맹과 상관없이 우리 반도체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칩4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미 가입한 수준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봤다. 그는 “우리 기업은 미국의 중국 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반입 금지와 관련해 이미 영향을 받고 있으며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 정책에도 협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 반도체지원법 시행으로 연방정부의 보조금 및 세제혜택을 받을 경우 향후 중국 내 유의미한 신증설 투자가 어려워 미국, 일본, 대만과 같은 노선을 걷게 되는 만큼, 칩4 동맹 가입을 언급해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경 부연구위원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제적인 가치 경중을 따져봐야 한다”며 “미국의 경우 차세대 반도체 기술 경쟁력과 스마트폰, 차량용 반도체 등 주요 수요산업 시장 확보의 기회가 있는 반면 중국은 우리나라 메모리반도체를 수입해 ICT 최종재를 서양에 수출하는 구조이므로 우리 주요 시장으로서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중국 내 첨단반도체 생산 규제 대비·제3의 생산기지 마련 필요”

누구보다 고민이 많은 건 당사자인 우리 반도체 기업들이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신설하며 인센티브를 받게 될 경우 중국 내 최첨단 메모리 생산을 위한 추가 투자는 어려워진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이미 반도체 초미세공정을 위한 EUV 노광장비를 중국 공장에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 중국의 보복 가능성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묘수를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우리 기업의 중국 내 수출 비중이 큰 만큼 칩4 가입 이후 예상되는 메모리반도체 수출 감소에 대한 대안을 미국이 제시해야 한다”며 “이는 중국 내 시장을 둔 대만도 갖고 있는 고민이며 중국이 향후 메모리반도체 기술력을 갖게 돼 우리나라 반도체 수입을 줄이게 되는 상황에서 결국 필요한 것으로 동남아시아나 중남미 등 제3의 생산기지 확보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미국이 우리 기업의 대중 기술 투자 및 반도체 공장 증설을 통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칩4 동맹 가입 전에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칩4 동맹에 가입하더라도 우리 기업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한 추가 증설과 기존 시설 업그레이드시 미국과 일본의 장비,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확약이 필요하다”며 “만약 중국 공장에서 향후 안정적인 생산을 약속해주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다는 점을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통상부가 강력히 주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병덕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향후 중국 내 첨단반도체 생산을 하지 못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최첨단 반도체는 중국이 아닌 지역에서 생산하되 모듈 등 완제품을 중국에 수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국가간 이해관계가 있겠지만 제품 판매 자체가 중국 내 기술 발전을 제한하는 칩4 동맹 취지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며 중국도 우리 제품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美·中 패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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