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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의 역할

송길호 기자I 2023.12.18 06:10:00

박주희 로펌 제이 대표변호사

선거철이 오긴 왔나보다. 하루에도 몇 통씩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메시지를 받는다. 메시지를 보내오는 사람들 중에는 연락처가 저장은 돼 있지만 이름도 가물가물, 언제, 어느 자리에서 마주친 인연인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부터 대체 나의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 사람들도 있다. SNS가 또 다른 홍보수단이 되면서 출판기념회가 아닌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도 한다. ‘1인 시위’ 를 SNS로 생중계하는 링크를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다. 세찬 비가 내리던 지난 주, ‘○○철폐를 위한 1인 시위’를 하겠다며 이름 모를 이가 보내온 생중계 링크를 실수로 눌러 접속하게 됐는데, 빗속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중년 남성을 보니 한편으론 짠하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선거가 대체 뭐길래 저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쏟아지는 홍보 메시지의 주인공 대다수는 법조인들이다. 내 주변에 법조인들이 많아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지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전체 국회의원의 중 39%가 법조인 출신이라고 하니 법조인들의 정계 진출은 다른 직역보다 적극적이다.

일각에선 법조인의 정계 진출에 대해 입신양명에만 힘쓰는 사람들이라며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역할은 ‘입법 활동’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법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오히려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게다가 현실에서 발생하는 법률 분쟁을 직접 처리하면서 입법의 미비라든지 입법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낀 사람들이니 그 경험을 잘 활용하면 누구보다 훌륭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4년 가까운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과연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이 그 역할을 잘 해주었는지 의문이다. 논란과 질타의 주인공이 된 사람부터 현직에 있을 때의 명석함은 사라지고 정쟁의 투사가 되거나 노회한 정치인으로 전락한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에 대한 국민의 비난은 비단 ‘국회의원 직’에 대한 비난만은 아닌 것 같아 같은 법조인으로서 낯부끄러울 때도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속해 있는 한 위원회의 회의에서 안건과 관련된 개정안의 처리 현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회기 만료로 폐기되겠죠’ 였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신속한 처리를 위해 정부 발의가 아닌 의원 발의를 힘들게 추진했었는데, 그마저도 의결되지 못하고 회기만료로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될 모양이다. 회의 자리에 있던 이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회기 만료에 의한 폐기’를 예견하는 모습에서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명징하게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다.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법안이 이 법안만은 아닐 것이다.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 자격을 제한하는 ‘구하라법’은 20대 국회에서도 회기 만료로 폐기된 이력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 수순을 밟을까 걱정이다. 심지어 사안이 시급한데도 국회에서 개정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1958년 제정돼 우리 사법 체계의 근간이 되는 민법은 여전히 일본 민법의 잔재와 어려운 용어, 현실과 동떨어진 법리 등으로 전부 개정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심지어 정부가 전부개정을 추진했음에도 국회에서는 처리되지 못했다.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에게 실망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 누구보다 입법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이들이 정치 싸움을 하느라 본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에 더 큰 실망감을 느낀다. 그리고 법조인이라면 ‘기한’과 ‘마감’에 누구보다 충실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몰려오는 메시지만 보더라도 이번 선거에도 많은 법조인들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국회의원이 되길 바라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아는 만큼만이라도 행동하는 국회의원이 돼줬으면 한다. 그들이 법률가로서 갈고 닦은 법에 대한 경험, 이해가 ‘법꾸라지’의 오명으로 헛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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