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일상..요트에 빠진 부자들[찐부자 리포트]

백주아 기자I 2022.10.24 06:00:00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요트 인구 3만명 추정
레저보트 등록수·조종면허 취득자 증가 추세
정박비만 연간 1000만원..부대비용은 따로
의사·변호사·교수 등 전문직들 유입 증가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코스피 상장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근무 중인 유성학(가명·52) 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동 반포조종면허시험장에서 ‘요트조종면허’를 취득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스키,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겨왔다”며 “익스트림 스포츠의 끝판왕은 결국 ‘요트’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이어 “40피트 세일(sail) 요트를 타고 언제든 자유롭게 바다에 나갈 생각을 하면 심장이 뛴다”고 말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해양레저의 꽃 요트를 취미로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골프, 승마 등 육상에서 즐기는 고급 스포츠를 넘어 선진국 산업인 해양레저 스포츠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위치한 서울마리나 클럽&요트. (사진=서울마리나 클럽&요트 공식 홈페이지)
23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레저보트(세일링요트·모터보트) 등록수는 지난 2007년 2400여척에서 지난해 2만9701대로 약 13배 늘었다. 지난 9월 기준으로는 총 3만1242대로 9개월 사이 1541대가 추가됐다. 최근 5년간 연간 약 2500대씩 증가하는 추세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와 청정 공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요트 인구도 증가세도 뚜렷하다. 국내에서 요트를 합법적으로 운전하기 위해서는 요트조종면허를 소지해야 한다.

해경에 따르면 면허제도를 도입한 지난 2000년 이후 조종면허 취득자는 2005년 157명, 2010년 753명, 2015년 1050명에서 지난해 1641명을 기록, 지난 9월 기준으로 누적 1만8725명으로 집계됐다. 업계는 국가대표 선수와 요트 관련 사업 종사자를 포함해 동호인 등 요트 관련 인구가 약 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 요트팀이 서울 여의도 한강 양화대교와 서강대교 사이에서 세일링을 즐기고 있는 모습. (사진=백주아 기자)
요트는 유람·항해·경주를 위한 범선으로 해양레저의 정점에 위치한 고급 스포츠다. 요트는 크게 돛을 이용해 바람을 추진력으로 가는 ‘세일요트’와 엔진 등 동력을 사용하는 ‘파워요트’로 구분한다. 선상 위의 파티나 유람을 즐기는 사람은 럭셔리 파워요트를 타지만 레저나 익스트림 스포츠로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은 세일요트를 탄다. 세일요트는 크기에 따라 1~3인승 딩기(20피트, 약 6m), 3인승 이상의 크루저(23~50ft 이상)로 나뉜다.

대학 시절 동호회 활동으로 시작해 19년째 세일요트를 타고 있는 이민찬(가명·43) 씨는 “요트의 가장 큰 매력은 마음 가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움에 있다”며 “여기에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팀워크를 발휘해 바람이나 파도 등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 대응할 때 느끼는 역동성과 쾌감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동호회 활동을 하며 코로나19 이전에는 여러 국제 대회에도 출전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바라본 요트 선착장. (사진=백주아 기자)
요트 인구가 늘고 있지만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다. 요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 등 ‘여유’가 필요해서다.

우선 배 가격은 크기나 옵션에 따라 수천만원대부터 수십억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국내에 관련 기자재 제조 역량을 갖춘 기업이 없는 만큼 요트 관련 제품은 100% 수입에 의존한다. 중고품마저도 원가보다 비싸게 판매되는 경우도 흔하다.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국내 요트 항구(마리나)에 배를 정박하기 위해서는 연간 최소 500만~1000만원의 정박비를 내야 한다. 관리비 등 여러 부대 비용까지 고려하면 월평균 100만~150만원은 소요되는 셈이다. 국내에서 지난 2015년 ‘마리나항만법’이 시행되면서 요트 대여업이 합법화됐지만 자기 배를 소유하며 꾸준히 취미로 즐기는 인구는 극소수다.

실제로 요트 산업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도 소득수준과 연관이 있다. 지난 1997년 1인당 국민 소득 3만달러를 돌파한 미국의 현재 요트 산업은 국민 개개인의 생활에 속속 자리 잡고 있을 만큼 시장이 성숙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에 등록된 레저보트는 1200만대로 국내보다 400배나 많다. 국내 마리나는 37개소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1만2000곳의 마리나를 보유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요트 선착장에서 선수들이 딩기 요트를 타는 모습. (사진=백주아 기자)
최근 높은 진입 장벽에도 경제·사회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요트를 배우고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골프가 대중화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스포츠에 도전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특히 해외 경험이 많을수록 요트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설명이다.

서울 여의도 서울마리나 클럽&요트에서 요트 아카데미를 운영 중인 홍진영 감독은 “30대 후반의 전문직 종사자들 가운데 좀 더 역동적인 스포츠를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요트 인구가 늘고 있다”며 “기초 단계를 넘어 어느 정도 숙련된 퍼포먼스를 내고 싶은 사람들은 자동차 1대 값 정도를 들여 요트를 구매하고 세일링을 즐긴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제16회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로 올림픽 국가대표 팀 리더를 역임한 요트 전문가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아조트 애널리틱스가 최근 발간한 ‘세계의 요트 시장 부문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요트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부유층 인구 증가’가 꼽혔다. 소득 수준과 부유층이 증가함에 따라 요트 산업의 대응 가능한 고객 기반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세계 요트 시장은 지난해 79억8000만달러(한화 약 11조5100억원) 규모로 해마다 6%대 성장이 예상된다.

지난 6월 8일 부안해경 제34회 대통령기 전국 시도 대항 요트대회. (사진=부안해양경찰서)
세계관광기구(UNWTO)는 해양레저산업은 성장잠재력이 높은 분야로 전 세계 관광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도 해양레저지원시설 조성과 각종 해양스포츠 행사 개최를 지원하고 단계적으로 크루즈 운항 정상화를 추진, 마리나 서비스를 다변화한다는 방침이다. 해양수산부는 해양레저인구가 지난 2020년 340만명에서 10년 내 1500만명으로 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어촌뉴딜300’ 정책에 따라 거점형 마리나, 소규모 계류 시설을 확충해 요트 바닷길을 만들고 완도 등 4곳에 해양치유센터를 준공하고 복합 해양레저관광도시 개발 추진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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