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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유서'에 담긴 간절한 염원[알면 쉬운 문화재]

이윤정 기자I 2023.08.05 07:00:00

올해 78주년 광복절
윤봉길 의사 유서 특별공개
두 아들에게 "조선을 위해 투사 되어라"

우리 ‘문화재’에는 민족의 역사와 뿌리가 담겨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수천, 수백년을 이어져 내려온 문화재는 우리 후손들이 잘 가꾸고 보존해 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죠. 문화재는 어렵고 고루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쉽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는 문화재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오는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이에요. 올해로 78주년을 맞았는데요. 광복절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윤봉길 의사의 자필 이력서와 유서를 특별 공개한다고 밝혔어요. 8월 5일부터 31일까지 상설전시실 1층 중근세관 대한제국실에서 윤봉길 의사의 유서 원본을 직접 볼 수 있는데요. 유서를 포함한 ‘윤봉길의사 유품’은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유서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요.

윤봉길 의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태어났어요. 덕산보통학교와 오치서숙에서 공부했고, 19세 때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죠. 그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때 중국으로 망명해 1931년 김구 선생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어요. 애국단의 단원으로서 일본의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 임무를 맡았죠.

항일 투쟁을 계속하던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혼자 일본의 상해사변 전승축하회가 열리던 상해의 홍구공원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총사령관 시라가와 등 일본의 군수뇌부를 제거하는데 성공했어요. 하지만 그 자리에서 체포돼 군법재판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죠. 11월 일본으로 이송됐고, 1932년 12월 19일 일본 대판 위수형무소에서 만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윤봉길 의사의 유서 원본(사진=국가보훈처).
윤봉길 의사가 직접 작성한 자필 유서는 펜글씨로 써져있고 크기는 가로 16.5㎝, 세로 29㎝예요. 제목은 ‘강보에 싸인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라고 적었죠. 윤봉길 의사는 서두에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라고 강조했는데요. 또한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놓아라”라며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고도 당부했어요. 다음은 독립을 향한 그의 간절한 마음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는 유서 전문입니다.

강보에 싸인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놓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윤봉길 의사의 유서 중 ‘동포에게 보내는 글’에는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라고 적혀있어요.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의사의 독립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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