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줌인] 우영우, 굿닥터, 그리고 말아톤

이순용 기자I 2022.08.14 07:31:19

곽기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 정신과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곽기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 정신과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를 꼽는다면 단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일 것이다. 이 글을 적는 본인은 드라마를 보지 못했지만 제목은 여러 매체, 여러 사람을 통해 들어왔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이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가 되어 훌륭하게 자신의 업무를 해내는 모습은 비단 나와 같은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사람들의 주의를 끌 만한 주제일 것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직접 드라마를 보지 못했기에 우영우라는 캐릭터에 대해
곽기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 정신과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요약하자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지만 뛰어난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어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후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 변호사 시험에서도 최상위 성적을 기록한 후 대형 로펌에 취업한 사람’인 듯하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주인공이 기존의 변호사들과는 다른 방식의 사고, 다른 방식의 행동을 통해 재판에 참여하는 모습은 지금까지의 다른 법정 드라마와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가장 유명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우영우’지만 10여년 전만해도 배우 주원씨가 연기한 ‘굿닥터’의 ‘박시온’이 가장 유명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였다. ‘굿닥터’의 ‘박시온’ 역시 자폐 스펙터럼 장애가 있지만 뛰어난 암기력과 공간지각능력이 있어 외과 레지던트로서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는 주인공이다. ‘우영우’와 ‘박시온’이라는 두 인물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았지만 기능 및 지능 정도에 비해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능력에 대해 ‘특별한 재능(savant skill)’이라고 이야기한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기억력이 뛰어나기도 하고 음악이나 그림 등에서도 특별한 재능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재능들은 부여받은 이름처럼 그 사람들을 보다 특별하게 보이게 만든다.

더 예전으로 돌아가보자. 드라마 ‘굿닥터’가 나타나기 10여년 전 우리나라에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 영화 ‘말아톤’이 있었다.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진 영화 ‘말아톤’은 주연인 ‘초원’ 역의 조승우씨와 또다른 주인공인 ‘초원’의 엄마 역 김미숙씨가 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와 그 가족의 모습을 연기하였고 연기력과 작품성으로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말아톤’의 주인공인 ‘초원’은 앞서 말한 두 주인공 ‘우영우’, ‘박시온’과는 달리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흔히 ‘특별한 재능(savant skill)’이라고 불리는 천재성이 확인된 사람이 아니지만 달리기에 대한 열정으로 그는 달렸고 ‘말아톤’을 마칠 때 밝고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관객들에게 큰 여운을 남겨주었다.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면서 여러 자폐 스펙트럼 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발달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거나 주변과 상호작용이 잘 되지 않는다, 혹은 눈맞춤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며 병원에 내원한다. 모든 아이들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진료 및 검사로 진단이 확인되는 아이의 부모들에게 진단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조심스러웠다.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부모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중에 전공의 시절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정신건강의학과적 장애 진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에 대해 무언가 어려움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질병에 대해 의사인 나 스스로가 가진 낙인이 아닌지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었다. 질병을 가진 사람은 불행하게 살 것이라는 편견에서 나온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언어적·비언어적 의사소통의 장애, 사회적 상호작용의 저하, 상동 행동 및 관심 범위의 제한 등을 주 증상으로 보이는 발달 장애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이름에서 ‘스펙트럼’이란 다양하면서 연속적인 양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앞서 말한 다양성으로 인해 자폐 아동의 증상 정도는 주변 자극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이에서부터 별 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 아이까지 환자마다 사뭇 다르다.

따라서 진단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진단만으로는 아이의 가능성을 다 예측할 수 없기에 중요한 것은 진단받은 이후의 치료이다. 발달장애 아동에 대해 흔히들 ‘발달을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발달의 속도가 다른 아이’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멈춤이 아닌 속도가 다른 아이이기에 적절한 도움을 받아 아이가 가진 재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때로는 ‘우영우’, ‘박시온’ 처럼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찾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특별한 재능’이 잘 찾아지지 않더라도 아이는 ‘초원’이처럼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하고싶은 일,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통해 그 누구보다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필자는 ‘정신장애가 있다는 사실은 아이가 남들보다 먼 길을 가게 할 지 모르지만 그것이 남들과 다른 도착점을 가도록 결정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늘 되새기며 진료에 임한다. 그리고 정신장애를 가진 아동의 보호자들 또한 항상 이 점을 기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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