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검사 출신 금감원장을 걱정하는 이유

김정민 기자I 2022.06.13 05:00:29
[이데일리 김정민 온라인총괄에디터]유능한 검사일수록 법과 원칙에 충실하고 타협이 없다. 이복현 신임 금감원장은 수사통, 특수통들이 즐비한 윤석열 사단내에서도 손꼽히는 칼잡이였으며 유능한 검사였다.

이복현 원장 취임과 맞물려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던 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도 부활했다. 수많은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금융·증권범죄 등 경제범죄를 엄단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조치라고 한다. 금감원과 합수단이 연계해 지본시장을 좀 먹는 경제범죄를 발본색원해 엄단하길 기대하고 응원한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라임·옵티머스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디스커버리 펀드 사태를 비롯해 최근 불거진 우리은행 614억 횡령사고 등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한 재조사나 제재 강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금감원을 금융검찰, 공정위를 경제검찰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들이 진짜 검찰은 아니다. 검찰은 범죄를 색출하고 범죄자를 소탕하는 게 사명이지만 금감원과 공정위는 다르다.

금감원의 공식 영문 명칭은 ‘Financial Supervisory Service’다. 금감원을 영어로 직역하면 ‘Financial Supervisory Office’가 맞다. 기관을 뜻하는 ’Office’ 대신 ‘Service’가 영문명에 들어간 것은 금융회사들 위에 군림하는 규제기관이 아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기관의 역할을 하라는 금감원 설립 취지를 반영한 결과다.

공정위 또한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정위원장을 맡아 공정위 역할을 재정립했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평소 ‘연성 규제’를 강조했다.

법에 의한 강제가 아닌 모범규준을 토대한 기업의 자율적 혁신이 재벌 개혁에 더 효과적이란 이유에서다. 김상조 전 실장은 공정위원장 재임시절 기업이 불법을 저지를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게 진정한 경제개혁이라고 했다. 김 전 실장이 꼽은 대표적 사례가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와 금감원의 금융그룹 통합감독 도입이다. 둘 모두 법이 아닌 관행과 행정의 변화다.

윤 대통령의 측근이어서, 검찰 출신이서 반대하는 게 아니다. ‘유능한 검사 출신’ 수장 아래서 금감원, 공정위가 사정당국화하고 업무의 중심이 금융회사와 기업의 불법행위를 밝혀내고 처벌하는데 맞춰질까 걱정하는 것이고, 금융회사와 기업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감시·감독 강화에 매달릴까 우려하는 것이다.

엄벌은 통쾌하다. 특히 그 대상이 우리 사회의 고위층일 경우 정의를 실현한 주체에는 박수와 칭송이 쏟아진다. 시스템을 정비해 재발을 방지하는 작업은 고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박수는커녕 비난받기 십상이다. 당장 눈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성과는 미진할 수 밖에 없어서다.

금감원와 공정위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내부통제 시스템 미비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법 행위를 예견하고 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법의 잣대로 경제범죄를 엄단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정은보 전임 금감원장이 이임사에서 남긴 “감독의 본연은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금융회사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끊임없이 시장과 소통해야 한다”는 주문을 이 원장이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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