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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10원 때문인가"…82세 할머니, 왜 농약사이다 건넸나[그해 오늘]

한광범 기자I 2023.07.18 00:01:11

2015년 경북 상주 사이다 농약 사건…2명 숨지고 4명 다쳐
수십년간 동고동락한 이웃주민 할머니의 잔혹한 범행 충격
끝까지 혐의 부인했지만…法 "농약사이다 건넨 점 인정돼"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5년 7월 18일. 경찰이 당시 82세 여성 박모씨에 대해 살인 등에 대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대구지법 상주지원은 이틀 후인 7월 20일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진행한 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할머니 6명이 숨지거나 중태에 빠진 상주 ‘농약사이다’ 사건의 피고인 박모씨가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2016년 5월 19일 대구고등법원으로 호송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80대 여성 박씨는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의 범인이었다. 농약 사이다를 마시고 2명이 숨지고 4명은 겨우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수십 년 간 박씨와 같은 시골 마을에서 동고동락했던 사이였다. 도대체 왜 박씨는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걸까.

사건은 같은 해 7월 14일 오후에 발생했다. 이날도 평소와 같이 마을 할머니들은 옹기종이 마을회관에서 모였다. 무더운 여름날, 마을회관 냉장고에 물이 없자 노인들은 사이다 1.5리터 페트병에 든 음료를 아무 의심 없이 나눠마셨다. 마을회관에 모인 할머니들 중 오직 박씨만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다.

사이다를 마신 노인 6명은 곧바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노인들이 1시간 넘게 쓰러져 있는 동안 마을회관에 있던 박씨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피해 노인 중 한 명은 마을회관 밖으로 기어나갔다. 마을회관 밖에서 몸을 떨고 있던 피해노인은 오후 3시43분께 마을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박씨는 해당 노인 옆에 서있었다. 과거 마을에서 식중독 사고가 있었기에 주민은 박씨에게 “또 뭐 먹었어요?”라고 물었으나, 박씨는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구급대까지 출동했지만 회관 내 쓰러진 주민 상황 안 알려

이에 주민은 해당 노인에게 급성 중풍이 온 것으로 착각해 곧바로 119에 신고를 했다.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해 해당 노인을 구조하고 떠났다. 마을회관 현관에 앉아서 이 과정을 지켜본 박씨는 다른 노인 5명이 마을회관 안에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구급대나 주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노인 1명이 구급대에 의해 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주민 2명이 달려왔지만 박씨는 이들과 일상적 대화만 하는 등 마을회관 내부 상황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마을회관 안에 쓰러졌던 다른 노인들은 주민이 50분 마을회관 안에 들어간 이후에야 발견돼 119 구조대에 긴급후송됐다.

박씨는 마을회관 안에서 쓰러진 노인들을 발견한 이장이 피해자들이 쓰러진 원인에 대해 묻자 “사이다 먹고 그래요”라는 취지의 답을 했다. 이장은 이를 토대로 “할머니들이 음료수를 먹고 쓰러져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 내용을 토대로 사이다병을 확보했다.

피해 노인들은 모두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그 중 2명은 끝에 숨을 거뒀다. 겨우 목숨을 건진 다른 노인들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사이다 페트병에선 고독성 살충제가 확인됐다. 할머니들 중 비교적 젊은 나이였던 60대 여성이 7월 16일 가장 먼저 의식을 찾았다. 경찰은 이 여성에 대해 피해자 조사를 진행한 후, 다음 날인 7월 17일 오전 사건 용의자로 박씨를 긴급체포했다.

할머니 6명이 숨지거나 중태에 빠진 상주 ‘농약사이다’ 사건의 피고인 박모씨가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 2016년 5월 19일 대구고등법원으로 호송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시 사이다 페트병은 박카스 뚜껑으로 닫혀져 있었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을 통해 박씨 집 앞 풀숲에서 빈 박카스병을 발견했다. 박카스병 안에는 사이다 페트병에서 발견된 고독성 살충제가 발견됐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박씨 집 안에서 풀숲에서 발견된 박카스와 제조번호 및 유효기간이 동일한 박카스 병들을 발견했다. 집에서 발견된 박카스는 10병들이 박스에서 1개가 모자란 9개였다. 경찰은 다른 마을 주민들 집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했지만 제조번호와 제조일자가 동일한 박카스 병은 발견하지 못했다.

더욱이 마을회관에서 피해 노인들이 쓰러질 당시 박씨가 입고 있던 옷들의 여러 곳과 박씨가 평소 타고 다니던 전동휠체어, 주거지에서 사용하는 지팡이에선 범행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고독성 살충제가 검출됐다.

박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박씨는 119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휴대전화를 이용해 119 신고를 할 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옷 등에서 농약이 검출된 것은 쓰러진 노인들이 토한 분비물을 휴지로 닦아주고 이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고 그 과정에서 농약 성분이 묻었을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박씨 옷 등에서 검출된 농약 성분에는 피해자들의 유전자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또 현장에서 찍힌 119 구조 당시 사진과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박씨가 다른 할머니들에 대해 구조 활동에 나섰다는 점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檢 “화투 두다 생긴 갈등이 범행 동기”

검찰은 박씨가 다른 노인들과 화투를 두다 생긴 갈등을 범행 동기로 파악했다. 박씨가 자주 속임수를 쓰는 것을 두고 노인 중 한명과 자주 다퉜고 이로 인해 감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판단이었다.

박씨는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배심원 7인은 만장일치로 유죄로 평결하고, 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는 양형 의견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 의견 그대로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오랜 시간 마을에서 지내던 피해자들 2명을 살해하고 4명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죄가 매우 무겁다”며 “그럼에도 박씨는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장을 임기응변식으로 수시로 변경해왔고 범행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박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박씨 변호인은 “피해자 진술에 의하더라도 박씨가 화투에서 속임수를 쓴 일로 다툰 것이 아니라 딴 돈 20원을 다 가지려고 해 다투게 됐던 것”이라며 “다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돌려달라고 한 10원이 원인인데, 10원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고 주장했다.

2심도 박씨의 주장을 일축하고 “박씨의 범행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2심 재판부는 “박씨가 악마의 심성을 가진 채 확정적 고의를 갖고 범행을 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면서도 “범행의 결과는 너무나 중대하고 유족들이나 살아남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겪고 있따”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평균수명을 고려할 때 80대인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면서도 “여러 양형 조건 사정들을 고려하고 1심이 배심원들의 일체된 의견을 받아들인 점 등을 감안할 때 형이 너무 무겁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무기징역을 그대로 유지했다.

박씨는 재차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16년 8월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의 무기징역형을 그대로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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