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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사망 소식은 일본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일본에서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데에 인색한 경향이 셌다. 남을 돕고자 하는 선의가 외려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를 경계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메이와쿠)는 게 미덕처럼 여기곤 했다.
그럼에도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이씨의 살신성인이었기에 주목을 받았다. 사고 이후 신오쿠보역에는 이씨의 의사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일본 초등학교 교재에 이씨 사례가 소개됐고, 이씨를 모델로 하는 공익광고도 제작됐다. 그를 기리는 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출시했다. 이씨가 다니던 일본 학교에는 전국에서 성금이 모여들었다. 이씨의 부모는 이씨의 정신을 기리고자 이를 기금으로 삼아 장학사업을 폈다.
한국 정부는 이씨의 사망을 의사로 인정하고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이씨의 모교 고려대학교는 그에게 명예 학사를 수여했다. 일본 정부는 2001년 사고 당시 이씨에게 훈장을 수여했고, 2015년 이씨의 부모에게도 훈장을 수여했다.
이씨의 희생은 한일 양국 관계에도 밀알이 됐다. 양국 관계가 늘 원만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수현 정신’을 잇고자 하는 열의는 계속됐다.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 모임은 2019년 11월 설립 10주년을 맞아 이씨의 고향 부산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이 모임에는 한일 양국 대학생이 참석했다. 당시는 한일이 무역분쟁으로 갈등하는 와중이었다.
일본에 간 한국인 유학생 신현구씨가 2006년 5월21일 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는 극적인 일이 있었다. 다행히 신씨와 일본인 모두 크게 다치지 않았다. 공교롭게 이씨가 의사한 장소와 같은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신씨가 다니던 일본 학교도 이씨가 거쳐 간 곳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