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어디 남양유업 뿐인가요’…PEF 속앓이 전에도 있었다

김성훈 기자I 2021.09.17 02:00:00

남양유업 VS 한앤코 법적공방 '끝장승부'
"돌연 매각 철회 통보 아주 드물지 않아"
지리한 법적공방 부담…강경대응 힘들어
남양유업 사태 업계 유의미한 선례 남길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남의 일 같지 않다.”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을 떠들썩하게 한 남양유업의 M&A 노쇼(계약 미이행)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 나오는 얘기다. 동종 업계라 느끼는 ‘동병상련(同病相憐)’도 있지만 M&A를 진행하다 예기치 못한 이유로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라는 게 업계 평가다.

자본 시장에서는 법적 공방으로 치달은 남양유업 사태가 의미 있는 결론을 맺길 바라고 있다. M&A 계약을 체결하고도 ‘단순 변심’ 내지는 ‘계약조건 불만족’ 등의 사유로 손바닥 뒤집듯 계약을 철회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선례로 남길 기대하는 눈치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돌연 매각 철회 통보…이전에도 있었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열린 임시주총에서 새 주인에 오르기로 했던 한앤코 측 사내이사 선임과 정관 일부를 변경하는 안을 ‘부결’했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달 홍원식 회장이 돌연 남양유업 매각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예견된 상황이다. 기존 계약 이행을 촉구하는 한앤코 측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남양유업과 법정 다툼을 앞두고 있다.

금액이나 업종 등에서 차이점을 보이지만 남양유업 사태와 같은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최근 블라인드 펀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 중견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관계자는 과거 있었던 한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실패 경험을 털어놨다.

이 PEF는 한 중견 업체 인수를 결정하고 논 바인딩(Non-binding) 업무협약(MOU)을 맺은 뒤 자금모집(펀딩)에 한창이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투자자들은 자금 집행까지 약속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매각을 결정한 업체 오너 측에서 돌연 ‘기업을 팔지 않겠다’며 나섰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MOU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매각 철회 통보는 너무 급작스러웠다. PEF 측에서 이유를 듣고자 대화를 시도했지만 돌아선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법적 다툼에 나서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시간과 비용 등을 생각했을 때 포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 PEF 관계자는 “(우리 회사가)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면 시간이 길어질 게 뻔한 상황이었다”며 “계약금 형태로 지불한 자금과 실사 비용 등을 보전받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고 회상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투자를 약속했던 출자자에게 해당 사실을 알려야 하는 점이었다. 딜소싱(투자처 발굴)만큼 어려운 작업이 펀딩인데 계약이 뒤집혔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신뢰’가 생명인 PEF 업계에서 차후 투자 유치에 대한 걱정도 해야 했다. 이 관계자는 “여러모로 마뜩잖은 경험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남양유업 사태 유의미한 선례로 남길

과거 M&A 자문을 맡았던 한 법조인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매각 작업이 무난히 흐르던 와중에 돌연 업체 측 오너가 ‘생각이 바뀌었다’고 매각을 철회한 것이다. 회사 측 오너가 며칠 뒤 계약 체결 장소에 홀연히 나타나 ‘계약을 없던 일로 해달라’며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 법조인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남양유업이 떠오르는 유사 사례를 겪고도 강경 대응에 나서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장기간의 법적 공방에서 오는 피로함과 추가 비용 지출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법리적으로 유리한 정황을 확보하고도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의 공방을 이어갈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정 기간 내 수익률을 내고 새 펀드를 꾸려야 하는 PEF 구조를 따져 봤을 때도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여건이다.

업계에서는 남양유업 사태 이후 계약 과정에서 신중을 기하거나 혹시 모를 조항 위반 등에 대한 단속을 철저히 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M&A 딜은 여전히 ‘신뢰’에 의존해 법적 구속력을 갖춘 계약 장치를 하지 않는 상황이 적지 않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남양유업 사태가 환기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혹시 모를 딜 드롭(협상 결렬)에 대비해 강도 높은 요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며 “결국 매도인 측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끝까지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계약이 무리 없이 이행되기만 바랄 때가 있다”고 말했다.

남양유업 법적 공방이 유의미한 선례로 남길 바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백한 계약을 위반한 M&A 노쇼 사례가 어느 정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다면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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