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아버지를 잃은 세 아이들은 살인자를 '아빠'라 불러야 했다[그해 오늘]

한광범 기자I 2023.02.22 00:02:00

2009년 불륜남녀, 남편 살해…4년간 사체은닉하다 발각
"아빠가 너희 버리고 떠났다"며 부정적 인식 지속 심어
체포후 "엄마 없는 아이들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궤변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3년 2월 22일. 청주흥덕경찰서는 정모(남, 당시 39세)씨와 김모(여, 당시 31세)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이들을 구속했다. 4년 전인 2009년 3월 김씨의 남편 A씨를 살해하고, 4년 동안이나 사체를 은닉했다는 것이 이들의 혐의였다.

이에 앞서 경찰은 3일 전인 2013년 2월 19일 오후 10시무렵 한 통의 제보를 받았다. “지인이 4년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과 함께 살고 있다”는 충격적 내용이었다. 경찰은 제보를 토대로 수사에 나서 하루 뒤인 20일 정씨와 김씨가 함께 살고 있던 정씨 집에서 미라 상태의 A씨 시신을 발견하고, 이들을 긴급체포했다.

다락방에서 발견된 A씨의 시신은 이불과 비닐 등으로 꽁꽁 싸인 채로 이사용 종이상자에 담겨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해당 집에는 피해자 A씨와 김씨의 세 자녀가 정씨, 김씨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에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남편을 살해한 김모(왼쪽)씨와 내연남 정모(오른쪽)씨가 2013년 2월 20일 긴급체포된 후 청주흥덕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건의 발단은 200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도살인미수죄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0월 가석방된 정씨는 온라인 채팅을 통해 자신을 미혼이라고 속인 김씨를 알게 됐다. 두 사람은 온라인상에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내연남 정씨, 강도살인미수 10년 복역 출소 직후 범행

김씨는 남편 A씨의 폭행 등으로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느끼던 상황이었고, 정씨는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해주는 김씨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두 사람은 이내 내연관계로 발전했고 실제 만남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김씨는 남편 A씨에게 친정집에 간다고 속이고 충북 청주에 거주하던 정씨 집에서 며칠 간 지내고 오기를 두어 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김씨의 이 같은 행각은 같은 해 3월 남편 A씨에게 발각됐다. 김씨는 정씨에게 내연관계 발각사실을 털어놓았고, 이를 듣고 집 인근으로 찾아온 정씨에게 남편 A씨와의 불화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하소연을 듣던 정씨는 “오늘 밤 내가 남편을 죽여주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동의한 김씨는 집 열쇠를 건넸다.

그리고 정씨는 다음날 새벽 시간에 A씨 집에 몰래 들어가 잠을 자고 있던 A씨를 흉기로 공격했다. A씨 비명소리에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어린 세 자녀가 잠에서 깨려 하자, 김씨는 자녀들에게 “아무 일도 아니다”고 안심시킨 후 다시 잠을 재웠다. 정씨와 김씨는 날이 밝은 후 물품을 구입해 A씨 사체를 은닉했다.

김씨는 범행 며칠 후 세 자녀들을 데리고 정씨의 청주 집으로 이사를 갔다. A씨 시신은 택시를 불러 옮겼다. 정씨 집 창고에 시신을 보관했던 이들은 2년 후인 2011년 3월 이사를 하게 되자, 시신을 이사를 가게된 집의 다락방으로 옮겨 보관했다. 이 기간 중 김씨 자녀들에겐 시신이 있는 방으로 절대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정씨 등은 장애인이었던 A씨 앞으로 나오는 월 100만원 이상의 장애인 수당 등을 수년 동안 챙겼다. 김씨는 세 자녀들에게 숨진 A씨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도록 세뇌했다. 자녀들에게 “아빠가 집을 나갔다”며 A씨가 자녀들을 버린 ‘나쁜 아빠’로 인식되게 했다. 김씨의 세 자녀들은 살인자인 정씨를 의붓아버지 삼고 ‘아빠’라로 불러야 했다.

사체를 은닉했던 내연남 정모씨의 집. 정씨는 이곳에서 공범 김모씨, 김씨와 피해자의 자녀들과 함께 살았다. (사진=연합뉴스)
술자리서 “시신 함께 옮겨달라” 언급했다 범행 들통

정씨와 김씨는 범행 이후에도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시신 처리에 고심하던 정씨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지인들에게 “시신을 함께 옮겨달라”고 제안하며 발각이 됐다. 경찰에 관련 제보가 접수됐고, 경찰은 2013년 2월 20일 정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A씨 시신을 발견하고 정씨와 김씨를 잇따라 체포했다.

김씨는 경찰에 체포된 후 범행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남편을 죽이지 않고 나만 집을 나가면) 아이들이 엄마만 찾을 텐데, 엄마 없는 아이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검찰은 정씨와 김씨를 살인과 사체은닉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수사단계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1심은 “내연관계에 있던 피고인들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던 피해자의 존엄한 생명을 앗아간 것으로 죄질이 매우 중하다”며 정씨와 김씨에게 각각 징역 20년, 징역 7년과 함께 전자발찌 20년 부착을 명령했다.

1심은 김씨 양형에 대해선 “정씨가 주도한 범행에 다소 소극적으로만 가담했고, 미성년 자녀들을 양육할 사람이 달리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권고형보다 낮은 형을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검찰과 피고인들 모두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2심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씨에게 징역 22년, 김씨에겐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전자발찌 20년 부착을 명령했다. 2심은 “수개월 전부터 불륜관계를 유지해 온 피고인들이 피해자가 이를 알게 되자 살해를 공모했다”며 “1심의 형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정씨와 김씨 모두 상고를 포기해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