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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노골적인 TPP 가입 의지..협상력만 떨어뜨려

방성훈 기자I 2015.10.20 15:56:22
[세종=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미국을 방문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물론, 한·미 공동성명서를 통해서도 한국의 TPP 가입 추진의사를 표명했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참석해 “TPP는 21세기 무역 체제의 큰 흐름이라고 하면, 우리도 당연히 그 흐름에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TPP 타결 직후인 지난 6일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우리나라가 TPP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을 비롯해 경제부총리와 통상장관까지 나서 한국이 TPP에 가입할 의사가 있음을 공개적으로 시사하면서 TPP 가입은 이미 기정사실화 됐다. 정부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은 ‘국익 극대화’라는 측면에서 언제, 어떻게 공식입장을 발표할 것인지다.

박 대통령이나 윤 장관이 주장한 것처럼 유럽연합(EU) 중국 등 세계 거대경제권과 자유무역협정(FTA)을 구축한 한국이라면 TPP에 가입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12개 회원국이 전 세계 GDP의 약 40%를 차지하는 만큼, 수출이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 있다.

우리와 주력 산업 분야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이 TPP에 참여했다면 글로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우리나라도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는 일각의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일본과 많이 닮아 있는 만큼, 앞으로 일본과 유사한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더라도 노골적으로 TPP 가입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외신에서는 이미 우리나라가 TPP에서 배제된 것에 대해 조급해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TPP에 참여한 12개국 중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10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했다. 단순하게 보면 TPP 가입은 일본과 멕시코와 FTA를 새롭게 체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일본, 멕시코와 FTA를 추진했다가 무산된 바 있다. 우리나라가 TPP 가입에 목매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면 일본이나 멕시코에서 과거보다 ‘문을 더 열라’고 요구해 올 수 있다.

이미 FTA를 체결한 국가들 역시 뜻하지 않은 가입 조건을 내걸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미국 측은 TPP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환영하면서도 ‘한·미 FTA 이행’에 무게를 뒀다. 미국 내에서는 한·미 FTA에 대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다는 평가가 많은데, 우리가 TPP 가입을 공식 선언했을 때 잃었던 것을 만회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미국은 2013년 상반기 우리나라의 TPP 가입을 설득해 왔다. 이에 대해 일본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카드였다는 해석이 많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물밑작업이었다는 얘기다.

12개 회원국들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면서 타결한 TPP인데, 우리나라가 이제 와서 숟가락만 놓겠다는 것처럼 볼 수 있다. 국무위원이라면 국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발언이나 행동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FTA와 같은 협상을 진행할 때 국내 반대 여론이 생기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면서 “한·미 FTA 협상 당시 국내 반발이 매우 컸는데, 미국 측에 ‘봐라, 국민들이 이렇게 반대하고 있으니까 미국에서 우리 사정을 봐줘야 한다’면서 조금 더 얻어내거나 내줄 것을 방어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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