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전문직도 사기 당해 빚더미…자포자기 말고 회생·파산"

성주원 기자I 2024.06.13 16:14:38

■윤정원 법률구조공단 서울회생파산센터장
50~60대 노령파산↑…고학력자 예외 아냐
일자리 부족으로 채무 재발생 '구조적 문제'
'자포자기'는 최악…전문가 도움 받아야
'도덕적 해이' 사례는 심사과정서 걸러져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최근 상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 50~60대 이상 연령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는다. 노령파산의 경우 나이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빚을 청산해도 다시 채무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악순환이 우려된다.”

지난 2월말부터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윤정원(사법연수원 36기) 변호사는 13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노령파산’ 증가세가 체감된다며 이같은 우려를 전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장 윤정원 변호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윤 센터장은 “공단의 도움을 받아 개인회생·파산 면책 결정을 받은 이후에 스스로 빈곤에서 탈출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최근 경제 상황과 일자리 문제 등이 녹록지 않아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차선책으로 저임금 일자리라도 많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센터장은 전문직이나 고학력자도 개인회생·파산에 있어서는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해외 유학파나 명문대 출신인데 사업에 실패하거나 명의대여, 보증 문제로 전 재산을 날리고 센터를 찾는 채무자들이 종종 있다”며 “최근에는 보이스피싱이나 투자 사기로 인해 재산상 피해를 입고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신종 사기 수법은 겉으로 보기에 그럴싸하게 포장돼 있고 지능화돼 있다”며 “법률행위나 계약을 체결할 때는 전문가와 상의해서 위험성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등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자신의 빚을 회생·파산 제도를 통해 탕감받는 채무자들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회생·파산 신청인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시선이다.

윤 센터장은 이에 대해 “1차적인 책임은 채무자들에게 있는 것이 맞다”면서도 “회생·파산까지 가지 않기 위한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국가와 사회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책무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채무자들이 회생·파산을 통해 재기하지 않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사회복지 수급 혜택만 받으며 살 경우 사회적 비용 발생이 더 크다”며 “개인회생·파산제도는 자살이나 범죄율을 낮추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고의로 대출을 일으켜서 소비하거나 빼돌리는 등 실제 ‘도덕적 해이’에 해당하는 채무자의 경우 심사 과정에서 걸러진다는 것이 윤 센터장의 설명이다.

그는 “법원에서 사실관계를 다 파악하고 금융거래 내역을 살펴보고 관련 판결문 등을 검토해서 면책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다 걸러진다”며 “공단에서도 상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 사례라고 판단되면 기각한다”고 밝혔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장 윤정원 변호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사건은 총 4만4428건이다. 전년 동기(3만9859건) 대비 11.5% 증가했다. 이에 전국 회생법원들은 최근 담당 인력 증원 등 대응책 모색에 나서기도 했다.

윤 센터장은 “접수부터 면책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파산사건은 통상 5~6개월, 회생사건은 8~10개월 정도 소요되고 있다”며 “공단을 통해 접수되는 사건의 경우 전담재판부에서 심리하기 때문에 최근 사건 급증에도 예년과 같은 처리 기간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재무상황이 나빠졌다고 판단될 경우 가급적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사이 채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센터장은 “압류 통지서가 우편함에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확인하지도 않고 손을 놓아버리는 분들을 많이 봤다”며 “그런 경우라도 저희와 상담하면 회생·파산 등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률구조공단 서울개인회생·파산종합지원센터는 지난 2009년 설치돼 회생과 파산 및 부수사건에 대한 상담과 신청을 대리한다. 연간 7000여건을 상담해 회생 및 파산 관련 사건 4000여건을 처리하고 있다. 법률구조공단은 ‘중위소득 125% 이하’ 채무자에 대한 개인회생·파산 업무를 지원한다.

윤 센터장은 “과도한 빚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무자들이 다시 당당한 시민으로 경제활동을 하게 된다면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최대한 많은 분들이 회생·파산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