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04년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를 6.25전쟁 당시 ‘횡성-포동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한 고 차말줄 일병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래로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29명으로 늘었다.
‘6.25전쟁 당시 적군과 교전으로 사망한 군인 여러 명을 매장했다’는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2004년 9월 전문 발굴병력을 투입해 고인의 유해를 발견했다. 국유단은 2010년 9월 고인의 아들 차성일(1949년생) 씨를 찾아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후 과거 유전자 분석이 이뤄진 유해 중 특히 전사자가 다수 발굴된 지역의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를 더 정확한 최신 기술로 다시 분석해 올해 3월 부자 관계임을 최종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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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국군 제5사단 소속으로 ‘영남지구공비토벌’에 참전한 이후 ‘가평, 청평, 춘천지구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맞서 ‘횡성-포동리 부근 전투’에 참전 중 1951년 2월 8일 34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특히 고인은 1970년 훈련 중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내 소대원을 구한 고 차성도 중위의 삼촌이기도 했다. 차 중위는 육군3사관학교 1기로 1970년 1월 17일 육군소위로 임관해 육군 27사단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그해 5월 13일 소대 야간방어훈련 중 한 병사가 수류탄 투척을 위해 안전핀을 뽑다 실수로 놓치자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부하들을 구한 뒤 자신은 복부파열상으로 순직했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에 아들 차성일 씨는 “제 생애 동안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서울 현충원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울분을 달래왔다”면서 “험난한 산꼭대기를 수차례 오르내리며 아버지를 찾아준 소식을 듣고,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났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