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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약세 못 견딘다’…日, 내년 '나홀로 돈풀기' 재검토

김상윤 기자I 2022.12.18 15:57:52

10년간 고수한 통화완화정책 버리고 긴축나설 듯
'2% 물가상승 조기 달성 목표' 문구 변경 검토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일본 정부가 10년간 고수해 온 통화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내년 4월 이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대했던 경기부양 효과보다는 엔화 가치가 폭락하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건 기시다 후미오 내각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서 벗어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사진=AFP)
18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 등에 따르면 기시다 내각은 2013년 1월 아베 정부와 일본은행(BOJ)이 발표한 공동성명을 처음으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사다 내각은 목표 달성 시기를 중장기로 바꾸거나 목표 범위를 더 유연하게 변경하는 등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아베 정부 때 만든 이 성명은 디플레이션(물가하락+경기침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 물가상승 목표를 설정하고 가능한 한 빨리 달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그간 일본은행이 강력한 통화완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근거였다.

하지만 미국을 따라 각국이 긴축에 나서는 상황에서 일본만 나홀로 돈 풀기를 고수했고, 일본 엔화 가치가 구조적으로 폭락하는 현상이 지속하자 정부가 정책 선회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달러·엔 환율은 32년 만에 150엔 이상까지 치솟다가 현재는 130엔 후반대에서 등락하고 있지만, 강달러 현상이 지속하고 있어 언제든 150엔을 돌파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에 따라 수입물가가 치솟았고, 수출기업도 원자재값 상승 부담이 커졌다. 글로벌 경기도 좋지 않아 가격에 비용을 전가하지 못하면서 기업 이익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10월말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도 일부 참가자들은 대규모 통화완화의 출구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이 회의에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하도록 상한 없이 필요한 금액의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대규모 금융완화 방침을 고수했다.

일본 내각은 내년 4월 9일 임기가 만료되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자리를 내려놓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공동 성명 개정에 착수할 전망이다. 구로다 총재는 “일본의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통화 완화책을 유지할 것”이라며 일관되게 긴축을 반대해 왔다. 기시다 총리는 공동성명 개정에 찬성하는 인물을 구로다 총재 후임으로 세운 후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폐지하고 현행 0.25%인 장기 국채 수익률 목표치 상단을 높이는 등 돈줄을 조이는 쪽으로 정책을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
공동성명 개정 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물가상승률 2% 목표를 조기에 실현한다’는 문구를 삭제할 경우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겠다는 정부의 메시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엔화가치와 채권 금리가 급변하거나 ‘아베노믹스’를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의원들의 반발도 커질 가능성도 있다. 교도통신은 “공동 성명을 개정하면 일본은행의 정책 폭이 넓어질 수 있지만, 주가와 환율이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일본은행은 오는 19∼20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경제 동향과 정책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달 국회에서 “금융완화를 지속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말한 바 있어 금융완화 정책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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