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인수를 바라보는 국내 건설업계의 반응은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해외 자본이 국내 건설사를 인수해 제대로 성과를 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국 자본에 의한 최악의 M&A는 극동건설을 인수했던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꼽힌다. 론스타는 2003년 극동건설을 1700억원에 인수한 후 각종 우량자산을 팔아치우고, 유상감자와 고액 배당을 통해 2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회수해갔다. 이후 2008년에는 웅진홀딩스에 6600억원을 받고 극동건설을 매각해 수천억원의 차익까지 챙겼다. 론스타의 극동건설 인수·매각은 외국 자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국내 건설업계에 깊이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벽산건설 인수 역시 극동건설 사례와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박흥순 대한건설협회 건설정보실 실장은 “외국 자본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중이라 기업가치가 낮아진 건설업체의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결국 시세 차익이 목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아키드컨설팅이 중동지역 수주 확대를 인수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토목보다는 건축 쪽에 강점이 있는 벽산건설이 적절한 대상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태엽 해외건설협회 정보기획실 실장은 “벽산건설은 그동안 해외시장에 뚜렷한 기반이나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했다”며 “중동 자본이 인수했다고 해도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국내 건설업체 인수를 추진했던 해외 자본들이 충분한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채 M&A에 뛰어든 것도 불신을 키운 원인 중 하나다.
올해 7월 동양건설산업 인수 본계약까지 체결했던 노웨이트 컨소시엄은 당시 녹색산업인 태양광을 기반으로 해외 건설시장 진출에 주력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었다. 하지만 500억원에 이르는 인수자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하면서 중도금 미납으로 인한 계약 해지 등 올해만 4번의 유찰을 거듭한 끝에 결국 인수가 불발됐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외국 자본이 업체 인수에 뛰어들 경우 정확한 자산 규모나 자금 동원력을 가늠할 수 없다”며 “본계약이 성사돼도 매각 대금을 모두 치르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외 자본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투자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경영난에 빠진 업체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특히 해외 고급 건축분야에서 충분한 경쟁력과 인지도를 갖추고 있는 쌍용건설 등 우량기업의 경우 이를 인수한 외국 자본에게도 도약이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은 “현재 100위권 건설업체 중 23곳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중이지만 현 시장 상황을 볼 때 국내 기업이 이들 업체를 인수해 정상화를 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건전한 외국 자본이 싱가포르·베트남 등 아시아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기술력이 담보된 국내 건설사를 인수한다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